빛의 뿌리
이채민
봄부터 식탁에는 꽃보다 모래알이 수북했다
현관에는 독버섯을 밟고 온 신발짝이 훌쩍거렸다
잠든 사이 꿈에서 걸어 나온 사자(死者)가
선명치 않은 발자국을 자주 남겼다
엄마의 부음을 들고 온 여름은
찐득하고 어두웠으므로
자주 바람을 불러들였다
꽃을 이고 태어난 딸의 팔자를 염려하던 엄마는
바람을 싫어했지만 나는 바람의 행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바람이 소리를 걸어 둔 언덕에
활짝 핀 죽음을 꼭꼭 묻어 주었다
여름이 지나고
냉장고에서 세탁기에서 책상 위에서 찻잔에서
엄마는 꽃잎처럼 사뿐히 날아와 이것들과 나를 다듬는다
한 곳을 응시하다 틀어진 척추뼈를 만져 주고
바람의 발톱에 쓰러진 어느 날도 잘 일으켜세운다
죽은 자의 눈동자에 빛의 뿌리가 있음을
여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月刊文學』2015-12월호 <시>에서
* 이채민/ 2004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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