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빛의 뿌리/ 이채민

검지 정숙자 2015. 11. 26. 01:24

 

 

    빛의 뿌리

 

    이채민

 

 

  봄부터 식탁에는 꽃보다 모래알이 수북했다

  현관에는 독버섯을 밟고 온 신발짝이 훌쩍거렸다

  잠든 사이 꿈에서 걸어 나온 사자(死者)가

  선명치 않은 발자국을 자주 남겼다

 

  엄마의 부음을 들고 온 여름은

  찐득하고 어두웠으므로

  자주 바람을 불러들였다

  꽃을 이고 태어난 딸의 팔자를 염려하던 엄마는

  바람을 싫어했지만 나는 바람의 행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바람이 소리를 걸어 둔 언덕에

  활짝 핀 죽음을 꼭꼭 묻어 주었다

 

  여름이 지나고

  냉장고에서 세탁기에서 책상 위에서 찻잔에서

  엄마는 꽃잎처럼 사뿐히 날아와 이것들과 나를 다듬는다

  한 곳을 응시하다 틀어진 척추뼈를 만져 주고

  바람의 발톱에 쓰러진 어느 날도 잘 일으켜세운다

  죽은 자의 눈동자에 빛의 뿌리가 있음을

  여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月刊文學』2015-12월호 <시>에서

   * 이채민/ 2004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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