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개와 늑대/ 강영환

검지 정숙자 2015. 11. 23. 00:59

 

 

    개와 늑대

 

    강영환

 

 

  개 한 마리를 우리에 가두고 밥을 먹여 키웠다

  밥이 조금만 늦어도 송곳니를 보이며 사나워졌다

  보름달이 뜨지 않아도 개는 곧잘 늑대가 되었다

  친할 수 없는 거리에서 서로를 경계하며 눈을 피했지만

  느슨해진 문고리가 풀린 줄도 모르고 밥을 주려고 다가갔을 때

  늑대라 불리는 개가, 개라 부르는 늑대가 우리에서 뛰쳐나왔다

  핏발 가시지 않은 살기 띤 눈과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늑대가 나온 우리 안으로 들어가 얼른 문을 닫아걸었다

  문을 열라 굳게 잠긴 집 앞에서 절망하는 늑대에게

  얼룩무늬 진 상처를 꺼내 달빛에 젖어 떠내려가도록

  늑대 혹은 개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했다

  늑대는 어디 가지 않고 문앞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우리에 갇힌 채 개에게 밥을 던져주었다

  늑대는 냄새를 맡고 이내 날카로운 송곳니로 내 몸을 겨냥했다

  몰려든 사람들도 무서워 접근하지 못했다

  늑대는 다른 사람 접근을 막고 내 탈출을 감시했다

  우리 안에서 나는 개가 밥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렸다

  배가 고파도 밥이 오지 않았다 곁에 누구도 있어주지 않아

  나는 으르렁댔다 늑대도 어디 가지 않고 으르렁댔다

  배가 고파진 개도 나를 기다리며 으르렁거렸다

  개와 늑대와 나는 으르렁거리며 사나워졌다

  우린 마주 보고 서로를 기다리며 새벽까지 밤을 잤다

  다음날도 늑대는 나를 우리에 가두고 키울 참인지

  멀리 가지 않는 개가 문앞을 지키고 앉아

  나를 우리에 가두고 밥을 주지 않고 키웠다

 

 

   *『시에』2015-겨울호 <시에시>에서

  * 강영환/ 경남 산청 출생, 1977년《동아일보》신춘문예, 197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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