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낙엽 이불/ 정일남

검지 정숙자 2015. 11. 26. 01:14

 

 

    낙엽 이불

 

    정일남

 

 

  잎이 지니 그는 떠난다고 일러준다

  그가 떠나면 이 빈터에

  나만 주저앉아 열매 하나를 기다리게 된다

  능금 하나 들고 찾아올 사람 있을 리 없지

 

  꽃잎만 무더기로 쌓일 뿐

  꽃 아닌 것도 떨어져 합세할 때

 

  발등이 따뜻해야 잣나무 머리까지 따뜻해 솔새는 국경을 건

널 것이다

  나뭇잎 냄새가 사치하다

  풀무치는 생을 접고 장송곡을 읊으며 작별 의식에 든다

  잘 가라, 다시 만날 기약은 하지 말자

  조락을 이불 삼아 덮으니

  벙어리매미가 쌓은 침묵이 지극한데

  한 철 인연은 온데간데없다

 

  나는 묻힌다, 묻히면서 죽음의 단계를 연습한다

  부고장은 누가 죽었는지 영문도 모르고 날아들고

  갇혀 있는 절해고도

  모가지 위에 두개골 하나

  여름 장마가 선물한 웅덩이에서

  이불을 덮고 잠든다

 

 

   *『月刊文學』2015-12월호 <시>에서

  * 정일남/ 1973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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