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이불
정일남
잎이 지니 그는 떠난다고 일러준다
그가 떠나면 이 빈터에
나만 주저앉아 열매 하나를 기다리게 된다
능금 하나 들고 찾아올 사람 있을 리 없지
꽃잎만 무더기로 쌓일 뿐
꽃 아닌 것도 떨어져 합세할 때
발등이 따뜻해야 잣나무 머리까지 따뜻해 솔새는 국경을 건
널 것이다
나뭇잎 냄새가 사치하다
풀무치는 생을 접고 장송곡을 읊으며 작별 의식에 든다
잘 가라, 다시 만날 기약은 하지 말자
조락을 이불 삼아 덮으니
벙어리매미가 쌓은 침묵이 지극한데
한 철 인연은 온데간데없다
나는 묻힌다, 묻히면서 죽음의 단계를 연습한다
부고장은 누가 죽었는지 영문도 모르고 날아들고
갇혀 있는 절해고도
모가지 위에 두개골 하나
여름 장마가 선물한 웅덩이에서
이불을 덮고 잠든다
*『月刊文學』2015-12월호 <시>에서
* 정일남/ 1973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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