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성혁의 시 읽기/ 실종 : 한용국

검지 정숙자 2015. 9. 21. 18:10

 

 

  『시와미학』2015-가을호/ 이성혁의 시 읽기_ 삭망전에서 피워 올리는 가시의 얼굴(발췌)

 

 

    실종

 

    한용국

 

 

  누워 있는 남자의 입으로 공기가 말려들어 간다 느릿느릿 기다려왔다는

듯이 열린 식도를 통과해 간다 곧 저 공기는 남자의 꼬리뼈에서 마지막 흔

적을 밀어내리라 남겨질 한 줌의 질척함을 비둘기가 안다는 듯 고개 주억

거리며 지나간다 십분 전 그는 마지막 담배를 피웠으리라 손끝이 다 타 들

갈 때쯤 모든 회한과 환멸을 떨어뜨리고 수도승처럼 신문지 위에 누웠으

라 그의 잠을 깨우던 굉음이 떠나가고 세상이 그를 정적 속으로 초대한

것이다 한때 그를 빛나게 했던 꿈의 이마는 꼬깃꼬깃 접혀 있다 어쩌면 저

녁거리의 불빛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까 하지만 모로 누워 웅크린 자

는 무언가 단단히 그러쥔 손아귀처럼 보이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식을 단 한 번의 눈길로 스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 이

소리 없는 잔혹 앞에서야 모든 궁극적인 질문은 보편성을 얻는가 공기가

지나간 그의 몸을 얼룩진 신문의 활자들이 더듬더듬 읽으며 덮어주고 있다

          -시집『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2014년 刊-

 

 

  위의 시에서 죽은 사내의 모습은 시인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매제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그러쥔 손아귀"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있는 그의 웅크린 모습은 보편적인 '궁극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질문은 저 죽음이 "소리 없는 잔혹"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모습은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폭력에 의해 한 삶이 잔혹하게 파괴되었음을 드러낸다. 또한 그 죽음 앞에서 "한 번의 눈길로 스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시인의 물음은 저 폭력에 대한 우리들의 책임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서 한용국의 시는 시인의 개인적 심정을 표출하는 서정성으로부터 사회적인 서정성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저 웅크려 죽은 이를 통해 표현한 시인 자신의 내면적 삶의 상징적 죽음에 대하여, 시인이 자기 개인의 문제에서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 보편적인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성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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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혁(李城赫)/ 19678년 서울 출생. 2003년 《대한매일신문》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저서『불꽃과 트임』『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서정시와 실재』『미래의 시를 향하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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