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모서리를 읽다
임봄
둥근 앉은뱅이 밥상이 사라진 후부터 방안엔 점점 모서리가 생겨
났다 네모난 식탁 모서리들을 쓰다듬는 달빛만 갈수록 둥글어졌다
밤이 깊어지면 누군가가 딱딱 이를 부딪히며 울었다 울음은 어둠의
모서리에 부딪혀 되돌아올 때 더 또렷이 존재를 드러냈다 불온한 혀
끝에서 망을 보던 단어들이 조용히 밥 알갱이 속으로 스며들었다 결
별을 선언하지도 못했는데 모든 것이 일시에 사라졌다 처마 밑에서
노란 주둥이를 벌리던 제비가 사라지고 마당을 기어가던 지렁이가
사라지고 무릎걸음으로 문턱을 넘어오던 말들이 사라졌다 슬픔은 어
떻게 일상이 되는가 환한 대낮이 어둠을 낳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는
다 이방인의 눈물이 가득한 방에서 우리는 각자 몸을 웅크리고 모서
리에 등을 댄 채 잠이 든다
*『시와미학』2015-가을호 <발표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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