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박남희
풀잎 위에 개미 한 마리가 기어다닌다
가늘고 긴 발가락으로 잠시 꼬물거리다가
무엇엔가 골똘해 있다
나는 문득 풀잎이 되어본다
몸이 간질간질하다
개미가 내 몸에 발가락으로 써대는 글은 무얼까
개미는 자신이 걸어온 단단한 길을 버리고
풀잎 위에서 새로운 길을 연다
개미는 풀잎 위에 자서전을 쓰듯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가는 발을 꼬물거린다
훅, 한 차례 바람이 지나간다
풀잎을 따라 개미가 흔들린다
개미의 자서전이 그동안의 단조로움을 떨치고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흔들린다
개미의 자서전이 내 감각 속에서 점점 선명해진다
자서전 속의 내가 보인다
내가 누군가의 풀잎이 되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문학청춘』2015-봄호 <문학청춘의 시와 시인>에서
* 박남희/ 1966년 경기 고양 출생, 1996년《경인일보》, 1997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평-시, 신진숙/ 천국 2 : 안미옥 (0) | 2015.08.22 |
---|---|
자라나는 벽/ 김도이 (0) | 2015.08.22 |
평론_ 전해수/ 송찬호 :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0) | 2015.08.22 |
어떤 표정을 지을 때/ 황종권 (0) | 2015.08.21 |
너는 나의 나라/ 이현호 (0) | 2015.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