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나라
-운주저수지
이현호
세상에 없는 나라를 상상하면 조금은 살만해서 좋았다
가본 적 없는
본 적 없는
적 없는
없는
운주저수지에 밤마다 다녀가는 눈동자를 떠올리면
다음 생에 만나요, 라는 말을 이해하기 좋았다
늘 구름이 끼어 있어서 운주(雲柱)라고 불린 이름과
운주, 하고 발음하면 새어나가는 입바람 사이
없는 애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살 것 같아 좋았다
바람에 온몸을 흔들리면서도 떠내려가지 않는 구름들
비 쏟으며 작아지다 끝내 텅 빈 속을 드러내고
저수지의 일원이 되는, 그 속울음이 좋았다
가본 적 없는 저수지는 보지 않아서 물이 맑고
사랑도 적(敵)도 없어서 머무를 적(籍)도 없는
그 나라는 꿈에도 만날 일이 없어서 좋았다
약속에 늦은 사람처럼 서둘러 멀어지는 발소리가
밤새 귓속에 차오르는, 젖은 넋들의 나라에는
네가 없는 것이 참 좋았다
*『미네르바』2015-가을호 <신작시>에서
* 이현호/ 2007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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