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너는 나의 나라/ 이현호

검지 정숙자 2015. 8. 21. 17:24

 

 

      너는 나의 나라

      -운주저수지

 

       이현호

 

 

  세상에 없는 나라를 상상하면 조금은 살만해서 좋았다

  가본 적 없는

  본 적 없는

  적 없는

  없는

  운주저수지에 밤마다 다녀가는 눈동자를 떠올리면

  다음 생에 만나요, 라는 말을 이해하기 좋았다

  늘 구름이 끼어 있어서 운주(雲柱)라고 불린 이름과

  운주, 하고 발음하면 새어나가는 입바람 사이

  없는 애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살 것 같아 좋았다

  바람에 온몸을 흔들리면서도 떠내려가지 않는 구름들

  비 쏟으며 작아지다 끝내 텅 빈 속을 드러내고

  저수지의 일원이 되는, 그 속울음이 좋았다

  가본 적 없는 저수지는 보지 않아서 물이 맑고

  사랑도 적(敵)도 없어서 머무를 적(籍)도 없는

  그 나라는 꿈에도 만날 일이 없어서 좋았다

  약속에 늦은 사람처럼 서둘러 멀어지는 발소리가

  밤새 귓속에 차오르는, 젖은 넋들의 나라에는

  네가 없는 것이 참 좋았다

 

  *『미네르바』2015-가을호 <신작시>에서 

  * 이현호/ 2007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