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자라나는 벽/ 김도이

검지 정숙자 2015. 8. 22. 08:10

 

 

      자라나는 벽

 

        김도이

 

 

  벽은 틈새를 키우고 있다

 

  나는 대못으로 상처를 메우려 했지만 애인은 자꾸

  벌어지며 슬픔만 박았다 습기 진 벽은 웅크린 못을

  쿵쿵 뱉어냈고, 벽지는 부풀며 세상 밖으로 조금씩

  자라났다

 

  가끔씩 벽지를 결정하는 것은 기둥이 아니라 틈

 이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어떤 공간은 답을 모

 른 채 마른다는 거였다 산 채로 매장당한 사랑이

 벽을 허물고 나와 인터뷰하는 낙서, 달라붙은 광

 고물, 올라가는 담쟁이덩굴, 기웃기웃 외출을 금지

 당한 미래

 

  내가 곪는 것을 들킬 때마다 벽은 귀를 당겨 속삭

  인다 무너져 내린 것도 다시 세우려 하지 마라 앞으

  로 나아가

 

  되돌아보지 않아도 자라나는 애인의 벽들이 늘어만

  갔다

 

 

   *『유심』2015-5월호 <유심시단>에서

   *  김도이/ 2014년 『열린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