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방민호 _ 월평/ 강지혜 : 좁은 길

검지 정숙자 2015. 8. 15. 17:08

 

 

  『유심』2015-4월호 <월평-詩/ 방민호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서 발췌

 

 

      좁은 길

 

       강지혜

 

 

  거대한 개와 마주했다

 

  가야 할 곳은 저 모퉁이를 돌아, 지쳐 쓰러질 때를 돌아, 또 한참

 

  개는 나를 보았고

  나는 개를 읽으려 했다

 

  적의는 없었지만 그것이 공포였다

 

  내게 없는 결심을 가졌으므로

 

  개가 발을 앞으로 내딛고

  내가 발을 뒤로 옮기자

 

  우리를 가둔 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공을 헛디디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개의 축축한 콧구멍이

 

  내가 가야 할 곳을 향해 느리게 움직였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손을 내젓고,

 

  개는 나를 구하려고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서로의 성조를 해독할 수 없고

 

  살점이 뜯기고 피가 무더기로 쏟아지도록

  개와 나는

 

  좁은 길에게 물렸다

                                                   -2015『문학의오늘』봄호-

 

 

  좁은 길이다. 거기서 화자는 거대한 개와 마주쳤다. 이상이 <오감도>에서 조감하는 새의 눈으로 내려다본 축도를, 이 시인은 그 현장, 사육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하는, 약한 존재의 하나로서 그려낸다.

  물론 이 시는 유년의 체험이라든가를 그 강렬한 인상의 차원에서 그려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가 하나의 단순한 경험 전달이 아님은 시인이 곳곳에 쳐놓은 암시들로써 입증된다. 2연에서 화자는 그가 가야 할 곳은 "저 모퉁이 돌아, 지쳐 쓰러질 때를 지나, 또 한참"이라고 했다. 뒷부분에서 화자는 개와 나라는 "우리"가 끝까지 서로의 성조를 해독할 수 없었노라고 했다. 그리하여 둘은 마치 고대 로마의 격투장에 선 노예 검투사들처럼 "살점이 뜯기고 피가 무더기로 쏟아지도록" 싸워야 했다.

  물론 시행의 배열은, 그렇게 싸운 것이 "개와 나" 사이의 일은 아니었음을, 그들을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물어뜯은 것은 "좁은 길"이라는 상황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들은 둘 다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한다. 그러나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좁은 길이라는 이름의 현대성인 것이다. 이 현대성의 우화가 문학사를 통해 되풀이 변주되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도 월평의 재미라면 재미일 수 있겠다. 이곳에서는 어떤 비대칭적인 비교도 형식의 나태한 자유로 인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방민호/ 1994년 『창작과 비평』으로 평론 등단, 2001년『현대시』로 시 등단, 현재 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