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聖者)의 설교
황동규
유난히 길숨한 불타의 귀가
새들이 재잘대고 있는 덤불로 갔다.
붉고 파랗고 흰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었다.
포롱포롱 저 녀석은 재잘재잘을
헤쳐 모여, 헤쳐 모여! 하고 있군.
아기 새 잃었나, 자꾸 뒤로 처지는 새들,
줄 잘못 섰는지 우왕좌왕하는 새들,
그리고 이따금 이들을 따라다니며
머리를 쪼아대는 새들은 어떻거지?
예수 쪽으로 몸을 돌리며 불타가 물었다.
'아씨시의 프란체스코가 새들에게 설교할 때
인간의 말로 했는가, 새들의 말로 했는가?
새소리에 귀를 준 채 예수가 답했다.
'성자의 말로 했겠지.'
'성자는 오래 참고 살다 세상 뜬 후에야 되는 줄 아는데.'
'사방에 꽃 피고 새들이 몰려들고
눈시울이 확 뎁혀지는데
성자가 시성식(諡聖式) 같은데 신경 썼겠는가?
-전문-
("어떻거지?" 필자의 의도로 여겨 "어떡하지?"로 바꾸지 않고 본문대로 옮겼습니다. 정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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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예』2015-봄호 <신작시> 에서
* 황동규/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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