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괄호에 밑줄 긋기/ 조명희

검지 정숙자 2015. 7. 8. 01:34

 

 

    괄호에 밑줄 긋기     

 

     조명희

 

 

  신호등이 빨갛게 달려든다

  꽁무니에 속도위반을 매달고 달리는 차들과

  친구의 사고 소식은 같은 속도였다

  문장에 갇혀 살더니 결국

  마침표 없이 끝나버린 한 행의 숨

  모여든 사람들은

  잠시, 옛사람의 건너편만을 짚을 뿐

  물음표의 끝점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오른손의 용도는 핸들에 충실해야 할 터

  부딪는 술잔이 어지럽다

 

  농협 앞 사거리는 어지럽다

  행인의 눈치만 살피던 신호등에게

  몸이 불편한 휠체어 하나 제대로 걸려든다

  횡단보도는 이중 삼중의 행인을 묶는다

  십자말 퍼즐이 한창인 대로변

  추이를 살펴야 하는

  비보호라든가 우회전엔 책임이 없다

  유턴은 불허

  전진만을 고집하는 왕복 8차선

  건너편 문항의 빈칸은 미로에 갇혔다

  발목 잡힌 낱말은

  용의주도하게 탈출을 시도해봄직도 한데

  사위가 비상구,

  비상하는 공중엔 밑줄이 굵겠다

 

  한 달 중 절반은 월말

  대출 코너에 바짝 붙어 몸의 각도를 줄인다

  형광색으로 표시된 부분의 괄호

  점멸등이 깜박인다

 

 

   *『현대시』2015-7월호 <신작특집>에서

   * 조명희/ 2012년『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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