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옆에 폭탄이 떨어져도
장인수
일어나기 무섭게
학교 가기 무섭게
밥 먹기 무섭게
학원 가기 무섭게
수업 끝나기 무섭게
방학하기 무섭게
'무섭게'가 와락 달려들었다.
'죽도록'이 또 와락 달려들었다.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운동하고
노래방 가서도 목 터져라 죽도록 노래 부르고
놀 때도 죽도록 놀아야 한단다.
정말 죽도록 살아야 하나?
"제자들아,
교실 옆에 폭탄이 떨어져도
집중력을 발휘해서 수학 문제를 마저 풀어야 한다.
그게 멋진 학생의 자세가 아니겠니?"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씀하신다.
엄마와 아빠도 너희들을 위해서
죽도록 일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정말
죽도록
무섭게
살면
더 가치 있고, 행복할 수 있을까?
- 시집『교실-소리 질러』(문학세계사, 2015)
*「교실 옆에 폭탄이 떨어져도」는 '무섭게'와 '죽도록'이라는 단어로 표상되는 삶을 권하는 이 나라, 이 시대의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에게 진정한 삶에 대하여 들이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시의 앞부분에서 반복되는 '무섭게'는 실제로 '…하자마자 곧'이라는 뜻이지만 여러 번 반복됨으로써 정말 비인간적이고 '무서운' 상황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여기서 화자는 '…한단다', '…말씀하신다'와 같이 상황을 조금 객관화하는 말투의 힘을 빌어 선생님으로서의 장인수 시인의 실제 모습으로부터 조금 벗어나 있다. 그는 끝 부분의 "정말/죽도록/ 무섭게/ 살면"에서 단어마다 행갈이를 하면서 호흡을 늦추어 독자들을 몰고 와 마지막 행 '더 가치 있고, 행복할 수 있을까?"에 풀어놓는다. 오늘의 교육 상황에 대해 시인으로부터 이런 폭탄 같은 경고 메세지를 받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병헌/ 문학평론가, 대진대 교수)
------------------------
*『문학청춘』2015-여름호 <줌렌즈의 좋은 시-17>에서
* 고영민/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문학사상』으로 등단
* 이병헌/ 1955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문과, 동 대학원 국문과,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저서『한국 현대비평의 문제』『내면의 열망』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괄호에 밑줄 긋기/ 조명희 (0) | 2015.07.08 |
---|---|
역사/ 허만하 (0) | 2015.07.08 |
빈 박카스 병에 대한 명상/ 고영민 (0) | 2015.07.07 |
뒤란의 시간/ 박형준 (0) | 2015.07.07 |
아우여, 사랑해!/ 김종해 (0) | 2015.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