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란의 시간
박형준
뒤뜰이라는 말을 고향에서는 뒤란이라고 불렀다. 그 뒤란
에는 대숲이 있고 감나무가 있고 그 감나무 아래 장독대들이
놓여 있었다. 그 뒤란에는 새 떼들이 먹으라고 사발에 흰 밥
알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장독대에서 퍼내는 것들은 구수
한 이야기가 되었다. 앞뜰에서 하지 못하는 속이야기를 우리
들은 뒤란에서 할 수 있었고 새하고도 먹을 것을 나눠먹을
줄 알았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떫은 감을 뒤란의 그늘로 가
득한 장독대 뚜껑에 올려놓고 우려먹던 맛은 또 어땠는지.
한여름, 장독대 위에서 익어가며 떫었던 땡감이 홍시마냥 달
콤해지는 시간이 뒤란에는 있었다.
*『문학수첩』2015-여름호 <이 계절에 만난 시인>에서
* 박형준/ 1991년《한국일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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