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회벽/ 최현우

검지 정숙자 2015. 6. 19. 14:01

 

 

    회벽

 

    최현우

 

 

  유목을 멈츤 이후로 벽이 발명되었다

  그때부터

  밟혀서 지워지지 않도록

  사람은 기억을 벽에 옮겨 보존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전시를 철거하고 나면

  차고 흰 벽에는 못구멍들이 남았다

  한 점으로 흘러나오는 벽의 내부

  밀도 높은 어둠이 근육이라는 걸 알았다

 

  다음, 다음으로

  다른 그림을 걸고 다시

  전람회는 열려야 하기에

  벽은 회복을 시작하고

 

  통증을 빻아 만든 가루

  시간에 불행을 섞어

  한 움큼 집어 바르고

  모르는 거리에서 몸을 말리면

 

  지구도 지구를 교체하기 위해

  재앙을 사용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새벽을 펴 바르며

  간밤의 별자리를 문질러 메우는 손

 

  나는 복원되지 않는다

  무수하게 뚫고 메우다 보면

  처음의 벽은 이미 사라진 벽

  우리는 어둠을 갱신하며 서 있다

 

 

   * 『예술가』2015-여름호 <이 시인을 읽는다/ 근작시>에서

   *   최현우/ 2014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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