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단절/ 이해존

검지 정숙자 2015. 6. 5. 14:27

 

 

    단절

 

    이해존

 

 

  대화를 나누거나 스스로 집중하거나, 음악은 그들을 공평하게 엮

어 놓는다.

 

  커피콩을 수확하는 모습이 벽에 걸려 있다. 그 아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나는 나를 떼어놓고 우연에 기대어 본다. 글자들을 흩뿌리고 밟고

골라내면서 살아 있는 것들에 포크를 찔러 넣어보는 시간. 도망간다.

펼쳐놓은 노트도 앉아 있는 의자도.

 

  달구어진 유지잔에 입술이 데인다. 뙤약볕 아래 연초 잎이 담배연

기를 내뿜는다.

 

  이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커피 열매

와 커피 잔 사이, 가시덤불과 대리석 사이.

 

  모든 공정을 짜낸 한 방울이 흐르고. 벽을 바라보던 무표정한 시간

이 트레이를 들고 가로지른다.

 

 

  * 『시와 사람』2015-여름호 <신작특집>에서

  *   이해존/ 2013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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