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논병아리/ 서수자

검지 정숙자 2015. 6. 5. 14:17

 

 

     논병아리

 

      서수자

 

 

  ― 이제 몸을 말려야지

  논병아리 한 마리 지는 해가 떨군 긴 잔광 속에서

  깃털을 다듬는다

  물살을 끼얹고 털어내고 끼얹고 털어내고 하염없다

  깃털도 털어내는 물방울이 그리는 동심원도 온통 황금색

  자체봘광 황금색

  논병아리 태양과 내가 일직선상에 있다

  썩은 물속에서 살아남은 하루치의 운을 감사하고

  내일의 운을 부탁하는 제의인 듯 신령스럽다

 

  어둑살이 퍼지자 무서운지 운다 삐르르

  어디서 다른 논병아리 한 마리가 미끌어져와

  나 여기 있었노라 잠깐 주둥이를 대자

  함께 헤엄치다 헤어진다

  저들의 밤은 그렇게 시작 되나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창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아파트가 물속에서우쭐우쭐 자란다

  흔들리는 물살에 잘리고 또 잘리는 아파트

 

  그 논병아리가 아파트 창유리

  따슨 불빛 속으로 들어간다

  내 배 위에서 헤엄치고 있다

  내가 겨울 개천이 되어 반듯하게 누워있다

 

 

  * 『시와 사람』2015-여름호 <신작특집>에서

  *  서수자/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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