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는 외롭다
이현승
밤 비행기를 타고 와서인지 그는
내내 우주에 대한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우주에 관한 책을 읽고 영감을 얻었다.
호원철폐, 독재타도가 최루탄, 화염병과 나뒹굴던 시절이다.
우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젊음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의 눈길이 어둠 너머를 응시할 때마다
바람이 불꽃에게 잠깐의 활기를 공급하듯이
별들이 자전과 공전의 주기 운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우주에 관해 내가 무얼 알겠는가?
나는 그가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자 나도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 중에
우리는 계속 걸어서 배가 조금 고팠는데,
우주를 생각하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다.
우주에서는 먼지만 한 태양계의 행성의, 먼지보다 작은 인간의
배고픔이 검은 배경에서 날카롭게 반짝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하루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기로 한 날
나는 약속 시간에 늦게 되었다. 나의 잘못이다.
모든 것이 정해진 궤도 위를 움직이는 우주에서
약속에 늦은 것은 아마 나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주기와 궤도 위에 선 듯 어김없이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가
기다림에 등 떠밀려 다시 우주로 향하는 사이
나는 약속 시간에 늦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우주로 떠밀게 된 것은 사과하고 싶다.
이 우주 안에서는 이유가 없는 일이란 없으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여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다 돌아도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려도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생각해 보면 빛나지 않는 별이란 없다.
그런데 그는 왜 이토록 우주에 골몰하는 것일까?
그가 죽음의 우주적인 차원을 말할 때 떠오른 생각이다.
*『시산맥』2015-봄호 <신작시>에서
* 이현승/ 2002년『문예중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