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상상의 속도
-無爲集 3
정숙자
게으름은 게으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제다
게으름에는 규칙이 없다 게으르다는 점 외에는 죄목도
없다
게으른 이의 침묵은 완만하다
그들은 도모하지 않는다 실패/실망/원성도 모른다 게으
름은 땀 흘리던 무릎의 마지막 도약
누군들 세월을 의욕하지 아니했으랴 파종을 즐기지 아니
했으랴 줄기와 잎새, 꽃과 열매를 위해 동분서주 아니했으
랴 새들이 물어가고 벌레에게 뜯기고 태풍과 서릿발에 짓
이겨진 종자 앞에서 분노치 아니했으랴
거듭거듭 다친 이들이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간, ―그것
이 바로 게으름인 것을
게으름은 사유의 세계로 달리는 제1번 국도다
갈등과 불면 쓸어낸 호흡이다
태양이 서쪽 창으로 기우는 동안 커피 한 잔을 마셨을 뿐
인 나의 하루여
인생은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
이 인생이란다
그 한마디 수확을 위해 청춘을 바친 삶이여
-『문학과의식』200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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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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