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 하나에 꽃 하나
정숙자
오늘은 2008년 2월 27일. 거실 바닥에 깔린 햇빛이 유난히 정갈하다. 유리창에 고인 햇발이 이리도 정다운 건 봄이 문턱까지 왔다는 증거다. 그러나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라면 변함없이 돌아오는 저 햇볕도 작년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같은 시간을 두 번 체험할 수 없다는 논리이니 나 자신도 분명 작년의 내 모습은 아닐 터. 외모는 물론 사고의 범주나 체계도 새로운 프랙탈 세포가 도입되었으리라. 우두커니 이런저런 생각을 뒤지는 게 얼마만인가. 오랫동안 부려온 육신에게 휴식을 베풀고 싶어진다. 괴발개발 끼적거려 놓고도 행복감에 빠져들던 아마추어 시절의 봄빛은 (서글펐지만) 얼마나 투명하고 부드러웠던가.
“고모, 나는 오래 전에 고모가 나한테 보낸 편지 한 통을 갖고 있어. 원본은 닳을까봐 서랍에 넣어두고 지금까지 사본을 만들어 읽어왔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하고, 컴퓨터 앞에 붙여놓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러 번 복사했지. 시간이 좀 지나면 종이가 낡아버리거든. 지금도 원본은 깊숙이 보관하고 있어. 고모가 그 편지를 보낼 당시 우리 모두 어려운 시기였지. ‘거치른 기반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우리 집안을 아우른 말이었어. 난 정말 고모의 어떤 글보다도 그때 나에게 보내준 그 편지가 좋았어. <겨울이 길다고 싫증내지는 말자. 봄은 언제든 오고야 마는 것. 나의 창에는 꽃 그림자 비치고, 너의 정원에도 봄새가 깃 치며 날아들리라. 아! 그러나 우리는 또한 주어진 양(量)은 울어야 하리라. 남모르는 곳에서 남모르게. 그리고 뜰 때에는 찬연히, ―태양과 같이 솟아야 하리라.> 이런 내용이야. 그런데 고모는 기억 안 나지? 다 읽어줄까? 난 말이야 이 편지만큼은 어느 유명작가의 문장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그때 이미 느꼈어.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고모가 보고 싶다면 보내줄게. 원본을 보내줄 수도 있어.”
따옴표 속에 가두어 놓은 이 대화는 내 친정집 장조카님(조카부터는 ‘님’자를 붙이는 게 예라고 한다)이 얼마 전에 걸어온 안부전화였다. 정작 내 기억에는 한 끗도 남아있지 않은 이십여 년 저쪽의 편지를 여태 보관하고 있었다니! 애지중지 숙독하고 있었다니! 냉혹한 사회구조 속에서 간댕간댕 버티는 나로서는 핑그르~ 출렁~ 눈까풀 밖으로 이슬 한 점 탈출시키지 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래, 등기로 보내다오. 복사본으로….” 며칠 후 편지의 사본이 내 손에 들어왔다. 누르스름 변색된 종이색깔과 오종종한 자필, 접힌 자국까지 그대로 복제된 게 찡하니 격세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세월이 그만큼이나 흘렀건만 현재 심경과 왜 이리도 다름이 없단 말인가. 스물다섯이던 조카님은 마흔일곱이 됐고, 서른다섯의 나 또한 머리털이 허연 쉰일곱 살짜리 할머니가 되었는데…. 한줄 한줄 실시간대로 들어박히는 이 비감은 어찌된 영문일까. 잘못 살아온 탓일까? 인생이란 늘 그런 것일까? 이런 게 바로 뛰어넘을 수 없는 운명의 굴레라는 걸까.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한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사상이 왜 내 삶에서는 빗나갔을까?
그리운 석희에게// 우리 아무것도 필요 없는 세상에, —마음 하나로만 살 수 있는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 타는 것(교통수단) 등등 모두 없고, 다만 마음만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러한 세상에,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리드미컬할 것이며 아름다울 것이겠는가. 악과 타협하지 않아도 되고, 부패를 느끼지 않아도 되고, 다만 자기의 이상향에 맞는 정신과 스스럼없이 만나, 앞뒤 계획하거나 잴 것 없는 대화에 취할 수 있게 되고, —아! 그러나 이러한 세상이란 ‘토머스 모어’조차도 고안해내지 못한 유토피아다. 꿈은 꿈이었음에 허물어지고, 현실은 현실이었음에 허물어지고, 우리의 삶은 삶이라는 이유로 고통스러워야 하는, —그리고 일 밀리그램 정도의 기쁨으로 너와 나를 위로하며 위안 받으며…. 우리들 모두 거치른 기반 위에 서 있는 나무들. 겨울이 너무 길다고 싫증내지는 말자. 봄은 언제든 오고야 마는 것. 나의 창에는 꽃 그림자 비치고, 너의 정원에도 봄새가 깃 치며 날아들리라. 아! 그러나 우리는 또한 주어진 양(量)은 울어야 하리라. 남모르는 곳에서 남모르게. 그리고 뜰 때에는 찬연히, —태양과 같이 솟아야 하리라. 1986. 2. 24. 숙자 고모가.
아니, 아니었다. 내 입때껏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까닭을 캐내고야 말았다. 오늘의 강물이 진정 그 옛날의 강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음새도 없이 한 필로 흘러내리는 강물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온도로, 똑같은 수파(水波)로 나울나울 발목을 적시고 있었으니 도대체 무슨 수로 ‘다른 강물’을 감각할 수 있었으리오. 언덕, 바람, 물살 아래 돌멩이들…. 태양, 달빛, 별들의 궤도가 전격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전혀 색다른 물결은 생겨나지 않는다. 언덕에 선 자의 변함없는 비창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현재이며, 어제오늘뿐 아니라 영겁에 드리워진 그림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강물이 곧 세상일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은 더 큰 의미에서 틀렸다고 짚으련다. 태양계의 외곽에 초라히 떠도는 지구(『코스모스』-칼 세이건著) 자체가 우리의 언덕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십 년 안팎의 심사가 왜 이리 똑같은지를 의심한 내 우둔과 불찰을 꾸짖어야겠다. 하루하루의 노력과 기대가 바닥을 치더라도 건강한 뇌와 의지력, 그리고 피워야 할 꽃이 남아있다면 우리의 발을 묻은 이 언덕은 그런대로 양지인 셈이다.
일경일화(一莖一花), ‘난초 중 난초’는 좀처럼 없는 지상의 별이라고 한다. ‘莖’자가 ‘줄기’라는 뜻이므로 줄기 하나에 꽃 하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난초에 마음 맺었던 한때, 나도 꼭 한번 일경일화를 피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九花/七花만 접했을 뿐 一花는 끝내 환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데 내 손에서 일경일화가 핀 적 있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줄기커녕 겨우 혀만 내민 꽃 하나가 있었는데, 폐일언하고 목옴추리*였다. 설마 그것이 꿈에 그리던 최고의 꽃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뿐더러 대놓고 비웃기까지 했다. “너도 꽃이라고 피었냐?”라고 말이다. 늦었지만 사과하련다. 여건이 좋았다면 어찌 줄기를 드높이지 않았겠는가. 여러 꽃송이를 매달지 않았겠는가. 일경일화의 진면목을 맨 처음 보아낸 이는 분명 자애로운 선비였거나 정신주의자였을 것이다. 내가 상상했던 일경일화는 줄기와 화판의 수려한 조화였으니, 참으로 얕고 천박한 발상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낙척불우의 처지에서 사력을 다해 밀어올린 꽃! 九花/七花를 날리기보다 一花의 산고가 얼마나 수승한 향기이냐. 자신의 과오가 아니라 환경에 눌린 난초가 지금도 우리 곁에 묵묵히 존재하리니.
오늘은 2008년 3월 1일. 이 단문을 쓰는 데 꼬박 나흘이 소요되었다. 내 펜촉은 갑갑하리만치 더디고 어눌하다. 한 음절, 한 음보, 한 행을 탁마하는 데 아끼고 아낀 시간을 터무니없이 들이부어야 한다. 딩동댕 소리가 감지되지 않으면 다음 문장을 열지 못한다. 때문에 마감일에 관계없이 미리미리 원고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결단코 쑤욱 쑥 솟구친 꽃대 위의 꽃들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일경일화가 어떤 의미인지 돈오(頓悟)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삼일절. 의로운 선조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날. 바위틈 절벽을 원망치 않고 제 안의 꽃을 향해 정진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 만세! 만세! 만세!
*목옴추리(명사): 전라북도 김제 지방의 사투리. 목이 몸체에 파묻혀 매우 옹색스럽게 보이는 형상을 이르는 말. 예1) 바깥 날씨가 얼마나 추웠던지 그는 목옴추리가 되어 돌아왔다. 예2) 그 활달하던 사람이 전쟁을 겪고 난 뒤 목옴추리가 되어버렸다.
2008.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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