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 또는 삶
이면우
높은 나무 등걸, 솟은 바위 너머에서 이쪽 목줄 향해 몸을 날린다 나는 미리 수건을 목에 감아뒀다 놈의 송곳 이빨이 목수건 깊이 파고든 그때, 한 손은 번개같이 풀고 남은 손이 놈의 목줄을 움켜쥔다 목뼈를 으스러뜨리듯, 간절히, 간절히 기원하듯 두 손 뭉뚱그려 꽉 움켜쥔다…… 나는 그림자도 없는 삵이 꾸는 꿈을 안다 한 삶을 송곳 이빨로 꿰뚫어 낯선 곳으로 한없이 끌고 가는 일, 그걸 즐기는 날렵한 몸과 천금(千金) 비단가죽, 바르르 바르르 떠는 놈의 목줄기 타고 건너와 맨손뿐인 사냥꾼의 꿈과 한 몸뚱어리가 되는 바로 그것
그래, 삵 사냥꾼은 자신의 전부 이를테면 가족까지 등에 지고 놈과 맞서는 것이다.
--------------------------
* 월간『현대시학』2015-2월호 <신작시>에서
* 이면우/ 1991년 시집『저 석양』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응(照應)의 푸른 방향성/ 고은산 (0) | 2015.02.08 |
---|---|
벽/ 신철규 (0) | 2015.02.03 |
유년의 강/ 박무웅 (0) | 2015.02.03 |
물의 증인/ 서동욱 (0) | 2015.01.10 |
탄력/ 서동욱 (0) | 2015.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