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물구나무서다/ 김세영

검지 정숙자 2013. 12. 16. 00:07

 

 

     심야의 2호선

 

       김세영

 

 

  밤늦은 귀가(歸家)

  흐물흐물한 애벌레처럼

  창이 벽이 되는 몸체로 들어가

  땅 속을 달린다

 

  꿈의 터널을 뚫는 두더지가

  어둠의 속살을 헤치는 박쥐로 진화했다는

  옛 이야기를 창의 진동으로 듣는다

 

  철제 껍데기 속의 번데기가

  나비로 우화(羽化)하는 꿈을 꾸다가

  한 생의 목적지를 지나쳐버린다

 

  귀에 익은 정거장의 이름이

  다시 한 번 잠을 깨울 때까지

  인큐베이터 속의 미숙아처럼

  잠 속을 달린다

 

  새로운 새벽의 귀가

  전생의 기억들로 가득한 조간을 들고

  낯설지 않은 집 앞에서 머뭇거린다.

 

 

  * 시집 『물구나무서다』에서/ 2012.11.20 <문학세계사> 펴냄

  * 김세영/ 1949년 부산 출생, 2007년『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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