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 생태
김유석
고추나방은 고추 꽃 속에 알을 낳는다.
꽃술에 맺히는 작은 고추 속으로 스며들어 자연부화한다.
풋풋한 속살을 파먹으며 자라는 애벌레는
매운맛이 들 무렵 고추를 뚫고 나와 날개를 단다.
안으로부터 뚫린 구멍은 치밀하고 깊다.
뚫리기 전엔 전혀 알라차릴 수 없는 그것이
멀쩡한 고추 속에
징그러운 벌레가 들어 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꽃 속에 알을 슬어 종을 보전해나가는 나방의
천외(天外)한 상태는
농약을 쳐도 매번 허탕,
외부에 붙어 기생하는 것들과는 본성이 달라
구멍이 보일 때면 이미 글렀다.
날개를 달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들의
잔망스러움에 이골 난 농투성이들
고추 꽃 필 무렵
미리 애벌레 몇 마리 가슴에 들여 내성을 기른다.
무엇이 슬어놓은 알인지
내 안에서 이따금 꿈틀대는 벌레에 대해서도
그것밖에는, 딱히 물어볼 정체가 없다.
* 시집 『놀이의 방식』에서/ 2013.11.29 <문학의전당> 펴냄
* 김유석/ 전북 김제 출생, 1989년《전북일보》신춘문예(시), 당선
1990년《서울신문》신춘문예(시), 당선
2013년《조선일보》(동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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