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범
이영광
십년을 쓰던 의자를 내다버리는 아침
세상도 버려온 내가 가구 따위를 못 버릴 리 없으니까,
의자를 들고 나가 놓아준다
의자도 버리는 내가,
십년을 의자에 앉아 생각만 했던 사람을
버리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사람도 안고 나가 놓아준다
이것은 너른 바깥에 창살 없는 새 감옥을 마련해주는 일
이제 그만 투항하여
광명 찾자는 일
늙은 의자는 초록 언덕 아래로 실려가고
고운 얼굴, 風樂처럼 공중을 날아간다
잘 가라, 탈출이라곤 모르던 인질아
인사하면
잘 있어라, 포기라곤 모르던 인질범
답례하며
사정을 말하자면,
내게는 겨우 새 의자가 하나 생겼을 뿐이나
사정을 숨기자면,
다시, 투항이라곤 모르는 인질범이 되었을 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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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나무는 간다』에서/ 2013.8.30 <(주) 창비> 펴냄
* 이영광/ 1965년 경북 의성 출생, 1998년『문예중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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