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인질범/ 이영광

검지 정숙자 2013. 12. 15. 02:48

 

 

     인질범

 

     이영광

 

 

  십년을 쓰던 의자를 내다버리는 아침

  세상도 버려온 내가 가구 따위를 못 버릴 리 없으니까,

  의자를 들고 나가 놓아준다

 

  의자도 버리는 내가,

  십년을 의자에 앉아 생각만 했던 사람을

  버리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사람도 안고 나가 놓아준다

 

  이것은 너른 바깥에 창살 없는 새 감옥을 마련해주는 일

  이제 그만 투항하여

  광명 찾자는 일

 

  늙은 의자는 초록 언덕 아래로 실려가고

  고운 얼굴, 風樂처럼 공중을 날아간다

 

  잘 가라, 탈출이라곤 모르던 인질아

  인사하면

  잘 있어라, 포기라곤 모르던 인질범

  답례하며

 

  사정을 말하자면,

  내게는 겨우 새 의자가 하나 생겼을 뿐이나

  사정을 숨기자면,

  다시, 투항이라곤 모르는 인질범이 되었을 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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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나무는 간다』에서/ 2013.8.30 <(주) 창비> 펴냄

  * 이영광/ 1965년 경북 의성 출생, 1998년『문예중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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