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양동마을 서백당/ 이 섬

검지 정숙자 2013. 12. 1. 02:02

 

 

    양동마을 서백당(書白堂)

 

     이 섬

 

 

  서백당 잘 가꾸어 놓은 정원 한 켠에서

  600년 된 향나무가 글을 쓰고 있네

  관복 바르게 갖춰 입고

  전서 예서 초서로 글을 쓰고 있네

  휘어지고 뻗고 치솟으며

  때로는 갈라지고 터지고 꺾이며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하루에 백 번씩 참을 인 자를 쓰노라면

  오르지 못할 봉우리가 없고

  건너지 못할 늪이 없다고

 

  외가마을

  묵향 진하게 스민 경주 손씨 종갓집에서

  풍채 좋은 향나무 어르신

  오늘도 세상 사는 법을 가르치시네

  문중 가솔들 불러 모아 몸소 설법을 하시네

 

  맞배지붕 떠받친 마루 끝에서

  다람쥐 한 마리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네

 

 

  * 시집 『황촉규 우리다』에서/ 2013.11.15 <문학아카데미> 펴냄

  * 이 섬/ 1993년『문학과의식』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