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오후
정용화
걷지 않는 발은 뿌리가 된다
버스를 타려고 언덕을 내려갈 때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힘겹게 서 있는 노인을 만날 수 있다
꽃도 다 시들어버린 목련나무 옆에서
수직으로 내리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오래 걸어왔던 걸음이 제 그림자에 갇혀 있다
분주함도 사라지고 야성적 본능이
식물성으로 순해지는 시간
미련이 없으면 저항도 없다
조금씩 땅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그 노인
물끄러미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저 무심함이 품고 있는 견고한 내력들
나 한때 저 목련나무의 꽃으로 핀 적이 있다
나무가 되어가는 노인과
죽어야 비로소 걷는 나무가
한 몸이 되어있는
* 시집『나선형의 저녁』에서/ 2013.10.25 <도서출판 애지> 펴냄
* 정용화/ 충북 충주 출생, 2001년『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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