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꿈이 아니다
-無爲集 5
정숙자
저 편의 사흘이 주어지면, ―첫째 날은 온종일 빈둥거리
리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리라
온갖 명암과 잡념으로 더럽혀진 정신을 찬찬히 목욕시키
리라
저 편의 사흘이 주어지면, ―둘째 날은 깨끗해진 시간의
첫 행위로써 편지를 띄우리라
보내온 책에 대한 회답은 물론
아무럴 것도 없는 마음을 친구에게 전하리라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꽃밭 이야기, …영산홍 아래
졸음 흥건한 고양이 이야기도 쓰리라
슬픔/절망/고뇌 그런 푸념은 아니하리라
지구인이면 누구나 자신의 그늘만으로도 만선(滿船)이리
니, 맑고 따뜻한 우스갯소리 새지 않게 담으리라
저 편의 사흘이 주어지면, ―마지막 날엔 시를 지어야지
여기저기 흩어진 메모들 공책에 꿰고 바람 따라 새들을
따라 준령을 넘으리라
은하수 건너가리라
세상에는 없는 길을 거닐어 사랑하는 이에게 찾아가리라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죽음보다 깊은 잠을 그 어깨에 기
대리라
아무 것도 생각지 않으리라
그리고 넷째 날에는, ―돌아와야지
다시 온갖 명암과 잡념에 끄달리며 주어진 한 생애를 묵
묵히 참아내리라
다섯째 날부터는 달력에 눈 두지 않으리라
다만 기도하리라
주어진 날과 주어졌던 날 주어질 날들 아래 엎드리리라
-『시안』200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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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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