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분할
-無爲集 6
정숙자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유리창 쪽에 양말을 넌다
발바닥이 바깥을 보도록 넌다
그 안쪽 줄에는 속옷을 널고 더 안쪽 줄에는 화장실만 지
키던 타월을 널고 마지막 그늘에는 겉옷을 넌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균등한 빛의 분배다
빨래들은 때 묻고 구겨진 신민
온갖 영화와 치욕을 함께 한 신민일진대 왕은 요즘도 찬
찬히 손빨래 한다
군신유의(君臣有意)는 왕으로부터
세제를 덜 풀어 강물이 곱고 헹군 물에 다시 헹궈 달빛이
맑고 관절을 움직여 와탑이 밝다
시간이야 좀 축이 나지만 왕의 신뢰는 왕으로부터
모든 빨래는 반듯이 개어 꼭꼭 밟는다
밟아 넌 빨래들은 언제나 새것이다 납작해지지 않는다
다리미로 고문한 신민과는 다르다 양말까지도 구멍이 나
도 처녀 적 올을 지킨다
우리 집 붉은 고무다라이의 주의는 <평등>이다
왕조차도 엎드려 비누칠한다
잘 마른 빨래 정성껏 접어 서랍에 넣을 때도 양말이 우선
이다
오랜 세월 그저 그렇게 한다 아직 신민의 데모가 없다
-『다층』200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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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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