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sign
이화은
한 죽음을 두고 원래 設이 분분한 법이지만
저 주목의 사인(死因)에 대해 나는 자살 쪽에 무게
를 둔다
나무는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불빛에 쫓긴 붉은 지네처럼
저 나무도 제 몸에서 목숨이 빠져나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았을 것이다
희고 성성한 머리칼부터 한 다발 밀어 올리는 갈
대도
태어나면서 이미 자살을 꿈꾸고 있다
한번 죽은 자들, 죽음의 맛에 길들여진 자들은
그 꿈을 접진 못한다
마을버스 정류장에도 시청 앞 광장에도
높은 빌딩 사무실에도 이미 죽은 자들이 버스를
타고
구호를 외치고 서류를 뒤적인다
자기 목숨이 다 새어나간 줄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긴 전화를 걸고 폭소를 터뜨린다
살았을 적 기억은 저렇듯 오랫동안 꼿꼿하다
죽어 천 년을 고집하는 주목의 죽음에서
붉은 기억을 지울 수 없듯이
죽음은 또 몇 천 번의 윤회를 되풀이해도
끊을 수 없는 중독이다
목숨이 새어나간 자리를 아무도 촘촘히 봉합하지
못했으니
느슨한 신의 그물망 사이로 하늘이 줄줄 새고 있다
* 시집『미간』에서/ 2013.1017 <(주)문학수첩> 펴냄
* 이화은/ 경북 진량 출생,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옆모습/ 권현형 (0) | 2013.11.01 |
|---|---|
| 기억의 기차/ 장종권 (0) | 2013.11.01 |
| 빛의 탄생/ 고은산 (0) | 2013.10.26 |
| 오해는 영원하다/ 안정옥 (0) | 2013.10.22 |
| 詩魔_십우도(여덟)/ 김영산 (0) | 2013.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