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사인sign/ 이화은

검지 정숙자 2013. 11. 1. 02:15

 

 

     사인sign

 

     이화은

 

 

  한 죽음을 두고 원래 設이 분분한 법이지만

  저 주목의 사인(死因)에 대해 나는 자살 쪽에 무게

를 둔다

  나무는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불빛에 쫓긴 붉은 지네처럼

  저 나무도 제 몸에서 목숨이 빠져나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았을 것이다

  희고 성성한 머리칼부터 한 다발 밀어 올리는 갈

대도

  태어나면서 이미 자살을 꿈꾸고 있다

  한번 죽은 자들, 죽음의 맛에 길들여진 자들은

  그 꿈을 접진 못한다

  마을버스 정류장에도 시청 앞 광장에도

  높은 빌딩 사무실에도 이미 죽은 자들이 버스를

타고

  구호를 외치고 서류를 뒤적인다

  자기 목숨이 다 새어나간 줄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긴 전화를 걸고 폭소를 터뜨린다

  살았을 적 기억은 저렇듯 오랫동안 꼿꼿하다

  죽어 천 년을 고집하는 주목의 죽음에서

  붉은 기억을 지울 수 없듯이

  죽음은 또 몇 천 번의 윤회를 되풀이해도

  끊을 수 없는 중독이다

  목숨이 새어나간 자리를 아무도 촘촘히 봉합하지

못했으니

  느슨한 신의 그물망 사이로 하늘이 줄줄 새고 있다

 

 

  * 시집『미간』에서/ 2013.1017 <(주)문학수첩> 펴냄

  * 이화은/ 경북 진량 출생,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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