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魔
――십우도(여덟)
김영산
그 상복 입은 여자는 평생 상복만 입다 죽을 것 같다고 내게 고백했다. "당신은 무덤을 껴안고 살고 나는 시를 껴안고 살았군요." 나는 격정의 시 앞에서 참을 수 없을 때면 자해를 한다고 고백했다. 내 시는 자해를 한다! 고백은 끈적끈적한 울음과 닮았다. 자해는 자위와 닮았다. 모든 쾌락은 닮았다! 생의 쾌락은 죽음의 쾌락인지 모른다?
고백은 어디까지나 고백일 뿐이다. 고백은 고백을 낳지만 자해와 자위만큼 다르다. 모든 쾌락이 닮았다는 것 외엔 아주 다르다. 그녀와 나는 서로 다른 별을 바라보며 산 것이다. 그녀의 별은 이미 사라져서 그 흔적만 흘러 다니고 나는 곧 사라질 별의 흔적을 미리 지우는 것이다.
나는 내 시를 애무하며 살았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모든 육신의 쾌락은 죽음의 쾌락인지 모른다? 그녀의 별을 어루만지는 일은 가능할까, 이미 없어진 별의 빛이 몇억 광년을 흘러와 사랑이 되었다면 사랑은 죽음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곧 사라질 별의 흔적을 미리 지웠다면 내 시는 자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별의 각질을 벗기는 시인이 있지만 별의 외투를 벗겨내는 시인도 있다. 붉은 옷 파란 옷을 입고 사는 별도 있지만 하얀 옷을 입고 사는 별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 죽음의 검은 옷조차 생이 된 블랙홀이란 별도 있다. 마지막 봉괴되기 직전에야 별은 외투를 다른 별에게 건네준다.
그녀는 하얀 별 아름다운 옷이 발목을 잡는다. 아름다움에 발목 잡혀본 자는 안다. 왜 아름다운 것은 불편한가, 아름다움은 죽음이라는 걸. 별이여 하얀 별이여! 그녀는 하얀 별인 것이다, 죽지도 못하고 우주에 떠 있는 미이라 같은 별. 그녀는 우주에서 자신을 다 태우고 떠 있는 하얀 별 그녀의 사랑은 하얀 별.
그녀는 하얀 별 아름다운 것이 발목을 잡는다, 아름다운 구두처럼――예쁜 발목을 잘라 전시해놓은 거리처럼――아름다움에 발목 잡혀본 사람은 안다, 아름다움은 죽음이라는 걸. 왜 아름다운 것은 편안한가, 길들여지기 위해 무수히 죽음의 군살이 달라붙는가.
시인의 시에는 자해의 흔적이 있다. 모든 상처가 별처럼 빛나진 않지만 시는 별을 그린다. 그녀에게 별이란 시를 써주고 싶었다. 그녀는 하얀 별이기에 별의 고백을 들려주고 싶었다. 모든 고백은 자신에 대한 얘기인 것을, 모든 고백은 제가 제게 들려주는 말인 것을――모든 고백의 별들은 알 것이다, 우리 모두 하얀 별이라는 걸! 그녀의 고백은 하얀 별.
서로의 고백이 우주가 되고 별이 될 줄 몰았다. 그녀와 나는 우리 근원을 이야기했던 것이다――그녀 하얀 별 사랑은 고통의 환희인 것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그녀는 자신을 다 태우고 있는 하얀 별. 살아있어도 죽은 하얀 별. 무엇이 죽으려는 별을 붙드나, 어느 죽음이 어느 죽음을 붙드나. 님아 강을 건너지 마오, 강을 건너지 마오.
그 상복 입은 여자의 중력은 죽음인지 모른다. 모든 별의 중력은 죽음인지 모른다. 우주 어머니 중력에서 태어나 중력으로 돌아가는 별, 모든 사랑은 중력이어서 너를 붙드나. 모든 중력에 대한 고백이 별의 고백인지 모른다. 우리는 골목에서 고백을 한다. 별 궁금증에서 고백이 비롯됐는지 모른다. 옷에 배인 상처가 별빛 같다. 옷의 실밥을 뜯듯 빛의 천 조각 뜯어내어 하얀 육신이 너를 붙드나.
그래서 빛나는 것들은 사라지며 속삭이는가, 이 모든 일이 중력의 마음이라면 별은 점점 멀어지며 환하다. 별들의 고백은 환하다, 우주가 넓어진 이유는 골목골목에서 별들이 나직이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녀가 반짝이며 말한다. 아주 멀리 가진 않고, 별들의 오래된 골목에서 속삭이는 하얀 별.
우주의 골목 수공업 지대에 재봉틀이 옷을 깁는다, 하얀 별에는 하얀 실밥이 날린다. 그 재봉틀 재단대 옆에는 재단한 하얀 천 조각 쌓인다. 별의 흔적에는 실밥이 묻어 있다. 수술 자국 아물 겨를 없이! 무덤의 뚜껑을 열면 관 속에 얼룩으로 남았다, 수의에 배인 얼룩 환하다! 하얀 별은 자신을 다 태워 해쓱해진 별.
우주의 골목 가로등 불빛이 환하다, 밤새 불빛 속에 눈은 내리고 먼 훗날 자신이 하얀 별이 될 줄 모르고 갈래머리 검은 교복 입은 소녀가 걸어가고 먼 훗날 상복 입은 여자가 걸어가고 소풍은 무덤으로 간다고 우리 어릴 적 소풍은 무덤으로 갔다고 봄이 오는 골목 돌아가는 소녀의 뒷모습.
우리는 하얀 별이 되어간다, 자신을 다 태운 하얀 별. 우주 어머니 중력에서 태어나 중력으로 돌아가는 하얀 별. 어느 별인들 돌아가지 않으랴,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더 이상 막다른 골목은 없다. 우주의 골목은 환하다! 당신은 내게 다가온 별이라, 하얀 별이라. 백지 같은 당신에게 별이란 시를 써주고 싶었다.
별은 아무것도 누설하지 않았다――내 시는 아무것도 누설하지 않았다!――별의 누설은 은은히 빛날 뿐이라고, 모든 고백은 제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에 창백하게 떠 있는 별. 하얀 별의 고백은 백지인지도 모른다고, 백지의 고백을 들어라! 하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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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하얀 별』에서/ 2013.9.27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 김영산/ 전남 나주 출생, 1990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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