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문
정숙자
재빨리 낌새를 알아차린다
지체 없이 행동한다
지그재그로 포물선으로 종횡무진 피한다
꺾었다가 폈다가 고꾸라졌다가 돌다가 쓰윽 항로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내 다시 나타나
내 손에 들린 전자 모기채에 ‘딱’ 소리와 함께 생을 마감한다
불과 몇 초일지라도 하루살이인 그에게는 굉장한 시간이었으므로, 너무 멀리 너무 많이 날아온 길이었으므로, …이 자리가 좀 전에 죽을 뻔한 그 자리라는 사실을 완전히 까먹은 것이다. 게다가 날타리는 우리 베란다의 거부분자였음. 이 대결은 애당초 어처구니없는 구도였음. 최선을 다해 살고자 했고 예지도 대응력도 뛰어났으며 나무랄 데 없는 전략이었으나 그는 출생이 너무 미약했던 것이다. 날개를 펼쳤댔자-힘껏 비행했댔자 불가항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훌륭했다
숙명적으로 적수가 될 수 없는 상대를
죽이려는 자의 일순을 장악했으니,
그런데 뭐냐? 이겼다는 나는
날타리만한 용기도 지혜도 민첩성도 없이
주야장천 거느린 책상과 컴퓨터, 가뭇없이 황량한 시계는 또 뭐냐?
* 『시산맥』2010-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