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진행
정숙자
죽음은 푸른빛이죠. 죽음은 오직 푸른빛이죠. 죽음에 빠졌을 때, 아니 빠졌다 나온 다음날부터 죽음에서 풀려나오는 모든 빛을 보았죠. 죽음에서 방면되어 예전에 걷던 산책로에 들어섰을 때, 너무도 환한 노란빛이 피어 있었죠. 그 노란빛은 개나리꽃이라는 별들이었죠. 그리고 막 돋아난 초록빛을 보았습니다. 그건 수십 년 동안이나 보아왔던 이파리들이었습니다만 처음 대하는 봄이었습니다. 뿐일까요! 어떤 빛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람을 만났습니다. 입원실에는 없던 그 미풍이 간간히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연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여기가 바로 천국이야 깨쳤습니다.
아직 온전치 못한 무릎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놓았죠. 하지만 이미 그런 불편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태양 구름 나뭇가지 사이에서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오를 때 여긴 분명, 분명! 천국이야 옷깃을 여몄습니다. 지난날 그렇게도 고통스러워했던, 실망과 좌절 곱씹던 삶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별을 건너가는 티켓이었다니. 이 행성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행운이었던 것입니다. 우주 어디에 이와 같은 언덕이 또 있겠으며 이와 같은 기슭이 또 있은들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뼈를 어찌 다시 얻을 수 있겠습니까? 꽃을 뭉개버리는 눈물일지언정 축복이라 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올문학』2010-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