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트레일러 남쪽
리 산
병 속에 남은 마지막 지폐를 꺼내
말린 생선과 마가목 열매로 빚은 술 몇 통
유황 냄새 진한 성냥을 샀어
세상 저쪽은 안개가 깊어
망설이며 떠나던 누군가는
지연되는 편도행 승차권을 찢어버리고
잠결에도 기다리는 품속으로 되돌아오기도 하겠지
영영 결항된 채로 담담해질 이름을 생각하며
읽지 않은 편지에 성냥을 당기고
오래 세워두었던 낡은 트레일러 가득 기름을 넣었어
찬바람 들던 지난 꿈속 내내 늑대가 울고
나도 같이 울기도 했지만
차바퀴를 뒤덮은 풀씨들을 뽑아 허공으로 날려주고 나면
마지막 기름이 다하기까지 나는 어디로 가게 되겠지
이제는 멸종된 크리스마스 섬의 미물들과
새로운 달이 떠 있는 강물에 몸을 씻는 거대한 코끼리
잘린 애인의 목을 돌려받아 몽마르트르 아래 묻었다는 그
여자가 사는 곳
숲으로도 도시로도 닿지 않은 그런 곳으로 가고 싶어
거기 그들이 살지 않아도
천천히 돌아오고 있을지 모를 무엇을 기다려
경적 소리 울리며 가고 싶어
바람은 다시 북북서로 불고
꿈속에서도 그치지 않던 눈발
국경수비대의 마지막 겨울 거리
마지막 눈길이야
*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에서/ 2013.5.31 <(주)문학동네> 펴냄
* 리 산/ 2006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센티멘털 노동자 동맹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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