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無爲集 8
정숙자
더위에 전신을 맡겨둡니다
가리마에서도 얼굴에서도 등에서도 땀이 납니다
일 년 내내 닫혀 있던 세포들이 문 열었습니다
묵은 공기가 환기됩니다
빛이 들어옵니다
실내가 새로워집니다
턱턱 숨막히는 이 더위로만이 미세한 창문들을 활짝 열
어놓을 수 있습니다
땀방울 솟아오른 자리마다 푸른 물이 듭니다
수만, 수십만 마리 매미가 울음탑을 쌓아올립니다
첫새벽부터 펼쳐지는 맴맴 소리는 가실가실 풀먹여 다듬
어낸 모시올입니다
귀를 담그면 발까지 시원합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질탕하게 벌어지는 도원(桃源)의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제비소리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참을성 많은 매아미 소리뿐입니다
고향 떠나온 사람들 하 불쌍타! 벌어먹고 사느라 고생한다
다만 한 철 베푸시는 하느님 은총입니다
신이 만든 찜통은 과연 인간들의 양푼과는 깊이가 다릅
니다
-『문학마당』200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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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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