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래도 가더니
정국희
늘 거기에 있겠거니
죽음이 가보지 않는 먼 나라로
훌쩍 데려가 버리지 않는 다음에야
항상 그렇게 있겠거니
마음 놓고 있던 사람
이젠 더 이상 거기에 없다
가지 말래도 기어코 가더니
소나기 퍼붓는 나른한 저승의 한철로
젖은 일생 밀쳐 놓고 끌려가더니
혼자는 체신머리 없어 차마 못 오고
가로등 불빛 내다거는 어스름 저녁 때면
주절대는 바람 앞세워 잠시 다녀가곤 한다
가없는 남의 살로 살다가 정신이 번쩍 들면
후회하다 지친 행색으로
천리 길을 건너오는 두서없는 마음 한 칸
그래 궁금한 관심이라고 해두자
위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 도시도 한때는 파밭이었고
디딤돌을 딛고 건너던 냇가였거늘
생을 단련하는 잔혹쯤이야
인간이 익어가는 과정이라 해두자
어느 때가 되면
나를 에워싼 그 많은 무례와
생목 올라오는 가슴 언저리가 숙면에 묻히겠지
가버린 사람이 무덤에 살고 있다
* 시집 『노스캐롤라이나의 밤』에서/ 2013.5.10 <도서출판 지혜> 펴냄
* 정국희/ 미주한국일보 신인상, 창조문학 신인상, 현재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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