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가지 말래도 가더니/ 정국희

검지 정숙자 2013. 5. 25. 00:45

 

 

    가지 말래도 가더니

 

      정국희

 

 

  늘 거기에 있겠거니

  죽음이 가보지 않는 먼 나라로

  훌쩍 데려가 버리지 않는 다음에야

  항상 그렇게 있겠거니

  마음 놓고 있던 사람

  이젠 더 이상 거기에 없다

 

  가지 말래도 기어코 가더니

  소나기 퍼붓는 나른한 저승의 한철로

  젖은 일생 밀쳐 놓고 끌려가더니

  혼자는 체신머리 없어 차마 못 오고

  가로등 불빛 내다거는 어스름 저녁 때면

  주절대는 바람 앞세워 잠시 다녀가곤 한다

 

  가없는 남의 살로 살다가 정신이 번쩍 들면

  후회하다 지친 행색으로

  천리 길을 건너오는 두서없는 마음 한 칸

  그래 궁금한 관심이라고 해두자

 

  위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 도시도 한때는 파밭이었고

  디딤돌을 딛고 건너던 냇가였거늘

  생을 단련하는 잔혹쯤이야

  인간이 익어가는 과정이라 해두자

 

  어느 때가 되면

  나를 에워싼 그 많은 무례와

  생목 올라오는 가슴 언저리가 숙면에 묻히겠지

 

  가버린 사람이 무덤에 살고 있다

 

 

  * 시집 『노스캐롤라이나의 밤』에서/ 2013.5.10 <도서출판 지혜> 펴냄

  * 정국희/ 미주한국일보 신인상, 창조문학 신인상, 현재 미국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