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칼날/ 강유환

검지 정숙자 2013. 4. 27. 02:32

 

 

    칼날

 

    강유환

 

 

  날 위에 부드러운 털을 올려놓고 살살 입으로 불면 털이 잘라진다는 칼이 吹毛劍이다 입과 털과 바람과 칼날이 찰나적으로 만나 최고의 칼이 만들어졌다

 

  명검을 찾아 사람들은 머나먼 길을 떠나왔다 어떤 이는 와서 그저 그런 칼자루를 쥐고 갔다 어떤 여자는 공산 위 퍼런 초승달 하나 꺼내어 들었다 어떤 남자는 어룽대는 찬란한 무지갯빛 만지다 가고 어떤 이는 뎅강 잘린 머리통을 들고 갔다 검법만 베끼어 가고 날에 햇빛이 쨍하는 순간 낙상한 이도 있었다

 

  사람들은 칼집이 되어 칼을 몸에 들였다 무언가 싹둑 베어 보이겠다고 도려내야 한다고 닦달하는 칼을 모셨다 검을 가진 날부터 어느 결에 털을 올릴 수 없었다 바람을 떼어낼 수 없었다 명검은 보이지 않고 검법이 무성해진 날들이었다 아름다운 노래를 잡아 새장에 가둘 수 없듯이 칼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당신의 터무니없는 말 속에서 끼쳐오는 피비린내, 사람들 속에 피 칠갑한 칼이 있다 취모검은 찌르거나 베지 않는다 날마다 칼들의 전쟁이다

 

  * 시집『꽃, 흰빛 입들』에서/ 2012.11.7 <시안> 발행

  * 강유환/ 전남 무안 출생, 2000년『시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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