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어떤 놈/ 박이화

검지 정숙자 2013. 4. 25. 00:36

 

 

    어떤 놈

 

    박이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은 듯한

  새끼 고양이가 아파트 화단 구석에

  무심히 방치되어 있다

 

  어미가 그 곁을 수시로 맴돌므로

  치워 주지도 묻어 주지도 못하는 사이

  벌써 한 패거리 파리 떼들

  풍악 소리 울리며 몰려와 붕붕거리고 있다

 

  저 비릿한 주검의 자리가

  어떤 놈들에겐 흥청망청 꽃자리였다니

  누렇게 달라붙은 눈곱마저 달디단 꿀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이따금

  커다란 화병 속에 코를 박고 킁킁대던 나도 어쩌면

  저 몹쓸 파리 떼와 다를 바 없었구나

  시름시름 비명 같은 향기 지르며 시들어갔던

  꽃들에게 나는,

  한없이 치사하고 야속한 그 어떤 놈이었구나

 

 

  * 시집 『흐드러지다』에서/ 2013.3.31 <(주)천년의시작> 펴냄

  * 박이화/ 199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들아 오너라/ 홍성란  (0) 2013.05.04
칼날/ 강유환  (0) 2013.04.27
나란히 누운 적 있다/ 김 윤  (0) 2013.04.24
시인과 꿈/ 김년균  (0) 2013.04.23
지하천문도/ 이동재  (0) 201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