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서상만
그럼 이제 저녁연기로 편지를 쓸까
겁 없이 천년도 아닌 만년을
그래도 글쟁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밭고랑 같은 원고지에
깨알같이 생각을 뿌리더니
제대로 싹 한번 내지 못했다
어느 시인은 이 작은 삽날로
주옥같은 시를 쓰고, 어떤 이는
생각을 갈아엎어 깊이 파내려가더니
그것이 숟가락이 되어 밥을 벌고
누구의 서투른 수사나 칼날의 벼리를 물고
오도독 이빨을 갈며
오랜 날, 불 꺼놓고 기다렸다
이 독방의 침잠
나는 허울 좋은 막대기였구나
제대로 고랑 한번 낸 적 없는
내 물음에 빤히 나를 올려보는
푸른 만년필
* 시집 『적소 謫所』에서/ 2013.3.25 <서정시학> 펴냄
* 서상만/ 경북 포항 호미곶 출생, 1982년『한국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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