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그 집의 씀바귀/ 이기인

검지 정숙자 2013. 4. 19. 16:21

 

 

    그 집의 씀바귀

 

      이기인

 

 

  씀바귀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앓고 있다

  비를 맞고 있는 당신들은 서로 아시는 사이들입니까

  길가에 내놓아진 세간들끼리는 그들만의 서운한 눈짓이

있다

  팔순잔치 할머니의 기념사진 속 얼굴들이 액자 속에서

후두둑 버려지는 비를 맞고 있다

  드문드문 이름을 캐물을 수 없는 풀잎들이 날아와서

  그 앞에서 어깨를 적시며 보초를 서고 있다

  할머니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던 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

버렸습니까

  유모차에서 나온 아이는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까맣고 슬픈 눈동자를 닮은 이들이 씀바귀 옆에 누워서

재개발지역의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부서진 집으로 오는 빗소리를 그 집의 씀바귀가 온종일

받고 있다

 

 

   *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에서/ 2010.6.18-1쇄, 2011.4.25-3쇄 <(주)창비> 발행

   * 이기인/ 경기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생 처음/ 이상호  (0) 2013.04.20
갈대/ 신경림  (0) 2013.04.20
삐라/ 채선  (0) 2013.04.19
비상구/ 채선  (0) 2013.04.19
비행의 기원/ 류인서  (0) 201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