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의 씀바귀
이기인
씀바귀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앓고 있다
비를 맞고 있는 당신들은 서로 아시는 사이들입니까
길가에 내놓아진 세간들끼리는 그들만의 서운한 눈짓이
있다
팔순잔치 할머니의 기념사진 속 얼굴들이 액자 속에서
후두둑 버려지는 비를 맞고 있다
드문드문 이름을 캐물을 수 없는 풀잎들이 날아와서
그 앞에서 어깨를 적시며 보초를 서고 있다
할머니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던 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
버렸습니까
유모차에서 나온 아이는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까맣고 슬픈 눈동자를 닮은 이들이 씀바귀 옆에 누워서
재개발지역의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부서진 집으로 오는 빗소리를 그 집의 씀바귀가 온종일
받고 있다
*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에서/ 2010.6.18-1쇄, 2011.4.25-3쇄 <(주)창비> 발행
* 이기인/ 경기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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