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다 울지 못한 새벽 있거든 맘껏 울어주리
채선
나는, 핏속에 울음을 가둔 벙어리로 태어났다
해마다 봄은 미리 죽거나 시들해졌다
몹쓸 병에 걸린 시절,
철 이른 꽃들 노랗게 흔들리고
계절 밖에서 떠도는 뜬소문 같은 칙칙한 안개
떼 지어 강가를 몰려다녔다.
늘 안개 속이거나 아수라장인 봄
싸움이 일고
설움이 일고
파탄이 일고
누군가는 피다 만 꽃을 따라 떠나기도 했으나
그리 오래 슬펐던 건 아니다.
꽃들은 제가 피고 진다는 걸 알까, 피었던 죄로
마른 꽃으로나마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도.
피어난 것들은 변질을 강요당하고
변질된 것들은 하나씩 검은색 이름을 갖는다.
백 년 가뭄 이어지는 국경 너머,
알록달록 짧은 희망으로 피어난 모두를 생략한 나는
곧
척박한 곳으로 던져질 것이다.
지워지는 사람들, 그 앞에
이제 우는 사람은 없다.
추억이든 기억이든
까무룩 꺼져드는 춘곤중 같은 또 다른 출생
울지 못한 것들이, 다시 앓기 시작한다'
* 시집 『미끼』에서/ 2013.3.30 <한국문연> 발행
* 채 선/ 서울 출생, 『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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