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금/ 설태수

검지 정숙자 2013. 4. 17. 17:15

 

 

    금

 

     설태수

 

 

금을 긋고 싶을 때가 있다.

간만에 전화 온 친구, 나보다 더 나를 아끼는 아내, 형제와 동료들한테도 금을 긋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알아보는 이 아무도 없는 다방에서 이렇게 글하고만 속삭이고 싶을 때가 있다. 연락이 뜸해지는 사람들 이름을 지우면서 자신에게도 금을 긋고 있는 내가 보인다.

짧지 않은 세월을 술에 많이 의지했지.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자주 했고 아내와 영화를 보곤 했지. 그런데 왜 자꾸 금을 긋고 있을까. 인간관계가 풍성해질수록 잃어버리는 것 같은 '나'를 찾아가는 중일까. 그래도 그렇지. 적절하게 조절해야지. 난데없는 바람에 실려 가기 전에 타협해야지. 詩가 그걸 용서 안 할지 모르니까. 아니, 시가 더 원할지도 모르지. 나를 독차지하고 싶은지 몰라. 시가 여간 샘이 많은 게 아니니까. 눈길 하나 뺏기고 싶지 않을 때도 있을 테니까.

가끔은 시의 싸늘한 눈길을 느낄 때가 있다네.

발걸음 얼어붙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네.

 

 

  * 시집 『말씀은 목마르다』에서/ 2013.2.25 <도서출판 시와세계> 펴냄

  * 설태수/ 경남 의령 출생, 199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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