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송현지_웃자란 말들(발췌)/ 혼노코 : 임지은

검지 정숙자 2024. 11. 24. 02:27

 

    혼노코

 

    임지은

 

 

  외로운 날에 부릅니다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혼노코

  혼노코

 

  여긴 혼자 와도 모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당신은 한국어를 잘합니까?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하겠지만

 

  한국어는 뜨거운 국물이 시원한 것만큼 이상합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가

  자리가 없다는 뜻도 있다는 뜻도 되니까요

 

  그럼 여기 나 있어요, 는

  내가 있기도 없기도 한 상태입니까?

 

  그래서 왔습니다

  혼노코

  혼노코

 

  자주 오면 단골이라 하던데

  여긴 무인 상점이군요

 

  혹시 CCTV를 돌려 보던 주인이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할까요?

 

  그럴 리가요

  천 오늘 처음인걸요

 

  사실 일본어를 잘 몰라도 됩니다

  혼노코는 혼자 노는 코인 노래방의 줄임말이거든요

 

  한글과 영어가 섞인 글자의 줄임말이

  일본어처럼 들린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렴 어때요

 

  이젠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처럼

  그 일은 머릿속에서 지우겠습니다

 

  혼노코 혼노코

 

  동전만 될 것 같은데 의외로

  카드도 됩니다

   -전문(『문학과 사회』, 2024-여름호)

 

  ▶웃자란 말들(발췌) _송현지/ 문학평론가

  '혼노코'라는 줄임밀이 외국어같이 들린다는 점에 착안한 듯 2000년대 시에서 번역 양식을 빌려 말하던 목소리들을 연상하게 하는 화자의 어색한 말투는 그가 코인 노래방에 혼자 가는 상황과 겹치며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한층 깊이 있게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외로운 날에 부릅니다"라고 분명하게 자신의 외로움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러한 해석의 구심점에 시의 제목이자 시에 반복해서 사용되는 '혼노코'라는 단어가 놓인다는 점, 다시 말하자면 사실상 오래되어 누구나 아는 유행어의 의미가 긴장 장치로 사용된다는 점, 그마저도 시인이 수수께끼와 같은 그 의미를 모두 다 풀어 설명한다는 점은 이와 같은 독법을 의심하게 한다. 그러니까 시인이 '혼노코'라는 단어의 의미와 그것이 가진 특성을, 이를테면 '혼노코'는 일본어처럼 들리지만 '혼자 코인 노래방'의 줄임말이며, 한국어와 영어를 합친 줄임말이 일본어처럼 들린다는 사실의 이상함 등을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시의 긴장이 사라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상황은 사실상 이 시가 '혼노코'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거나 '혼노코'에 가는 '나'의 외로움을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며, 시에서 이러한 내용적 요소가 중요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전략이 아닌가를 의심하게 한다. (p. 시105/ 론 1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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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파란』 2024-여름(34)호 <quarterly review 계간 리뷰> 에서    

  * 송현지/ 문학평론가, 202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