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찬_"길은 가면 뒤에 있다"(발췌)/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검지 정숙자 2024. 11. 17. 01:13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零下 十三度

  零下 二十度 地上에

  온몸을 뿌리 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零下에서

  零上으로 零上 五度 零上 十三度 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전문-

 

  ▶"길은, 가면 뒤에 있다."_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텍스트와 침묵 읽기 (발췌) _이찬/ 문학평론가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을 이룬다는 사실에서 알아챌 수 있듯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는 무수한 시편들을 묵시적 울림으로 비추고 감싸는 여러 겹의 주름을 품는다. 또한 시인이 수미일관하게 강조했던 "詩的인 것"의 광대무변한 넓이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텍스트" 안쪽의 "침묵"인 행간이나, "텍스트" 바깥쪽의 "보이지 않는" 의미망인 "콘텍스트"에서 풍겨 오는 것이기에 , 좀처럼 쉽게 간파되지 않는다. 

     (···)       

  어쩌면 이 시의 백미白眉는 "겨울-나무"의 가혹한 수난 및 고행의 감각과 "봄-나무"의 "불타"는 열망과 파죽지세의 상승감이 동시에 일으키는 '대극對極'의 팽팽한 리듬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상호 모순에 가까운 하강과 상승의 급격한 낙차落差와 그것이 불러오는 다이내믹한 길항拮抗 운동이야말로, 이 시가 1980년대 만인의 실존을 울리고 북돋고 가로질렀던 대중적 "감염력"의 실질적 원천일 것이다. 동시에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기념비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독창적 성취의 주요인에 해당할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측면은 "온몸으로"라는 작은 무늬가 하나의 단선적인 의미 매듭으로 수렴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한다. 또한 '강유상추剛柔相推의 리듬을 타고 흐르면서, 상호 이행移行으로 치달아가는 대위법적 횡단의 멕터가 이 시의 "온몸으로" 에둘러져 있음을 암시한다. (p. 시 70/ 론 70-71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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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파란』 2024-가을(34)호 <serial / 文質彬彬 연재 3회> 에서    

  * 이찬/ 문학평론가,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 시작, 저서『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문학비평집『헤르메스의 문장들』『시/몸의 향연』『감응의 빛살』『사건들의 예지』, 문화비평집『신성한 잉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