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장대가 있다 외 1편/ 정선희

검지 정숙자 2024. 11. 15. 02:45

 

    장대가 있다 외 1편

 

    정선희

 

 

  아파트 공터 옆

 

  긴 장대가 누워 있다 저 기다란, 나와 안면이 있다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하늘 높이를 조절하던

 

  균형을 잡아 하늘 한쪽을 받치면 마당이 기울어지는

 

  장대의 저 자세는 우리 집 감나무에게서 배운 것

 

  내 마음이 옆집 석류나무 쪽으로 기운 것을 알아서

 

  볼록하게 홍시로 채우고 싶었던 그 아이 볼을 다 보아서

 

  그때마다 엄마는

 

  구름을 타고 앉은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곤 했지만

 

  장대가 하늘을 치켜올리면 멍든 엄마도 없고

 

  손이 밤도깨비 같은 아버지도 내 눈이 셋이래도 부족할 동생도 없고

 

  그래, 인제 허공도 쉴 때가 되었지

 

  뒷방 늙은이 같은 버려진 장대 끝

 

  빈둥대는 추억을 손잡아 끈다

 

   하늘이 텅 빈다

       -전문(p. 58-59)    

 

 

          -------------------------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

 

 

  엄마가 손짓을 했다 그쪽으로 가지 마라

  뒷걸음질 치면서 기어이 산신각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니 베개가 흥건했다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꿈속에서 울고 있던 엄마와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안 하고 싶다고, 못 들은 척했어. 항암치료를 해야 서울에 쭉 계실 테니까. 그래야 오빠 집에 있을 거니까. 아들바라기 한 엄마니까 오빠가 모시는 게 당연해. 그게 엄마가 받을 벌이야.

 

  벌을 다 받기도 전에 죽어버린 엄마

  너무 빨리 꿈속으로 건너갔다 

  내가 벌을 주지만 않았어도

 

  나는 자주 눈물을 훔치며 꿈속을 다녀온다

       -전문(p. 73) 

 

  -------------------------

 * 시집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에서/ 2024. 11. 1. <상상인> 펴냄

 * 정선희/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푸른 빛이 걸어왔다』『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