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노천명(1912-1957, 45세)
오 척 일 촌 오 푼 키에 이 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전시대前時代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답지 않게 얹혀져 가냘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격은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을 게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 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삼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건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도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그만 유언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간다. 대竹처럼 꺾어는 질지언정 구리처럼 휘어지며 꾸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전문, 첫 시집 『산호림』(1938)에서-
▶시인은 외모보다 내면의 자신감에서 매력을 분출한다(발췌) _강명수/ 시인
노천명 시인은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불안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내고 있다. 마음속에 옹이진 골을 과감하게 언어로 승화시키고 있다. 억압되어 있는 감정을 강한 어조로 그것도 공격적인 어조로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마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강한 에너지를 얻고 있다. 즉,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인 셈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외모, 성적 매력, 활력, 옷 잘 입는 능력, 매력과 사회적 기술, 성적능력을 모두 아우르며, 신체적 매력과 사회적 매력이 혼합된 것이라고 캐서린 하킴은 그의 저서 『매력자본』에서 밝히고 있다. 즉 매력자본이 개인 자산인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외모지상주의의 반란을 일으키며, 열악한 외모에 기죽어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등한 외모를 거침없이 언어로 표출해내는 강인한 내면의식의 당당한 매력을 분출시키고 있다. (p. 시 257/ 론 25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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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간 『미당문학』 2024-하반기(18)호 <이 계절의 명시/ 감상평> 에서
* 노천명/ 황해도 장연군 비석리 출생, 1934년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시집 『산호림』『창변』『누가 알아주는 투사냐』『사슴의 노래』, 제 4시집의 일부와 미발표 유작시 등을 묶은 『노천명시집盧天命詩集』, 수필집 『산딸기』『나의 생활백서生活白書』, 평론· 동시· 동요도 발표했으며 독신으로 생애를 마침.
* 강명수/ 20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법성포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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