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구광렬

검지 정숙자 2024. 9. 6. 02:00

<초대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구광렬

 

 

  뿌리의 무사無事를 위해 그루터기를 살피면 삐쭉 마른 가지 위에 앉았던 이방의 텃새들 후루룩 천장 위로 오르고 밤새 잡풀들 침대 난간을 감아 종교재판을 받는 조수의 손금 같은 잎맥들을 발트해의 칙칙한 늪지대로부터 걷어 올려야먄 한다

 

  비가 빗금을 그으며 내릴 땐 처마가 짧은 내 작은 방에선 침대 모서리를 옮겨도 도굴을 당한 듯한 머릿속이 흥건히 젖어 와 동전을 뎐져 앞뒤를 가리고픈 날엔 그 카드 벨 같은 콜록거림, 대기원 속살을 비집고 멀리 고향 어느 별자리쯔음 쨍해 주길 바란다  

 

  예수의 열세 번째 제자를 만나고 돌아오던 날, 꺼질 듯 말 듯 개척교회 십자가가 바랜 셔츠 아래 문신으로 찍히던 날, 보았다 넝쿨 끝에 핀 꽃불 하나, 지구 반 바퀴를 돌고 돌아오던 새벽에도 젖은 발등에서조차 한들거리던 심지.

 

  미워할 수 없다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의 나의 부재를 못 믿고 후생이 궁금하다며 불 속까지 뛰어들려는 내 뿌리.

    -전문(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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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시작> 펴냄 

  * 구광열/ 1956년 대구 출생, 1986년 멕시코 문예지『마침표 EI Punto』로 등단, 한국문단에서는 『현대문학』에 시「들꽃」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활동, 시집 『슬프다 할 뻔했다』, 스페인어 시집『하늘보다 높은 땅 La tlerra mas alta que el clelo』, 소설『반구대』, 스페인어 소설『세뇨르 뭄 Sr. Mum』, 산문집『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등 저서 4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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