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홍성희_소란騷亂(발췌)/ 눈송이는 많은 복도를 가졌다▼ : 이설빈

검지 정숙자 2024. 8. 1. 02:24

 

    눈송이는 많은 복도를 가졌다

 

    이설빈

 

 

  창문에 눈송이가 붙어 있다

  입을 벌리고

  아무도 없는

  복도를 들여다보고 있다

 

  내 눈도 눈송이를 들여다본다

  두 눈에서 맥박이 뛰고

  번갈아 발소리가 녹아든다

 

  내 눈은 나보다 오래 깨어

  복도를 서성인다

 

  눈송이는 많은 복도를 가졌다

 

  *

 

  밤새 얼굴을 감싼 손에

  햇빛보다 부드럽고 환한

  진흙이 묻어나온다 진실을 털어놓을 때마다

  복도의 문이 열린다 지나쳐온 의문과 지나치게 가까운 질문이

  한몸으로 나를 호흡한다

 

  녹아내릴 것 같아

  그렇다고 창문을 열면

  눈이 달라붙겠지 온몸에 발소리가 번지겠지

  복도는 많은 문을 가졌다 그보다 더 많은 창문을 

  계속 닫고 있을래?

 

  복도에 불이 들어온다

  언제까지 눈을 뭉칠래?

 

  *

 

  불이 나간다 창문에 복도를 열고

  두 눈은 번갈아 발을 내딛는다

  복도 안팎으로

  눈발이 날린다

 

  눈송이는 많은 복도를 가졌다

 

  창문은 더 선명한 복도를 바란다

 

  복도는 더 적은 입김을 가져야 한다

     -전문-

 

   소란騷亂(발췌)_ 홍성희/ 문학평론가

  이 시는 '나'와 눈송이가 서로를 마주보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이 무대에 있는 방식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복도를 들여다보는 눈송이의 시선 앞에서 '나'는 자신의 눈으로 "눈송이를 들여다본"다. 이때 그의 '두 눈'은 '나'의 몸에 있는 하나의 신체 기관이 아니라, "맥박이 뛰고 번갈아 땅을 딛는 두 발처럼 움직이며 "나보다 오래 깨어/ 복도를 서성"이는 몸 자체이다. 이 몸은 눈송이가 들여다보는 중인 복도를 거니는 듯, 그 발소리가 녹아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창문을 열면/ 눈이 달라붙"을 "내 눈"은 이를테면 소유격이 무색하게 나의 것이 아니라 나 자체이고, 제 움직임으로 스스로 울리는 복도이며, 눈송이가 들여다보는 대상이자 "아무도 없는 공간 전체이다.

  그럴 때 '나'는 무대 공간 자체, 시가 펼쳐지는 무대로 있다. 이 무대 위에 등장인물로 있는 것은 바라보는 시선으로 복도의 입체를, 복도의 맥박을 가능하게 하는 눈송이뿐이다. 텅 빈 공간에 놓인 의자 하나하나처럼 눈송이의 시선이 무대의 성격을, 내용을, 질서를 지배하며, 무대로서 복도는 그 시선의 소유격에 귀속된다. "눈송이는" 아마도 꽃송이같이 엉킨 무수함으로 복도를 쪼개어 "많은 복도를 가"지고, 복도의 문법적 위치도 바꾸어버린다. 눈송이에게 시선을 돌려주며 주어의 자리에 있으려 하는 '나'는 목적어가 되어 "지나쳐 온 의문과 지나치게 가까운 질문들이/ 한 몸으로 나를 호흡"한다는 문장 속에 놓이고, 복도는 "많은 문"과 "그보다 더 많은 창문을" "가졌다"고 말해지는 때에도 "창문에 복도를 열"어 버리는 문장의 도처에 힘을 잃는다. "복도 안팎으로/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눈송이는 많은 복도를 가"지고, "창문은 더 선명한 복도를 바"라며, 그런 문장들의 복판에서 복도는 "더 적은 입김을 가"지는 방식으로만 주어의 자리에 놓일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는 복도마저도 더 조용히,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있어야 하고, 그런 눈송이의 법칙 하에서만 복도는, '나'는, 시는 있기를 계속한다. (p. 시 225-227/ 론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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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2월(410)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작품론> 에서

  * 이설빈/ 2014년『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울타리의 노래』

  * 홍성희/ 문학평론가,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