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미분과 달리기/ 정우신

검지 정숙자 2024. 7. 3. 01:18

 

    미분과 달리기

 

     정우신

 

 

  바람의 얼굴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봅니다

 

  염소가 발굽을 긁고 있네요

 

  지푸라기를 보다가

  콧김이 느껴져

  뺨을 긁었습니다

 

  트랙을 달리다 보면

  앞니가 시리고

  오른쪽 무릎이 절룩입니다

 

  신발 끈이 풀리면 기분이 좋습니다

  바닥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요

 

  금이 간 곳을 한참

  들여다보면

 

  개미는 보이지 않고

  누군가 술에 취해

  골목을 헤매고 있습니다

 

  날벌레를 머금은

  가로등

  내 허벅지로 퍼지고

 

  뒤를 보지 않고 달리면

  지붕 옆으로 무지개가 놓입니다

 

  나는 지금 트랙을 비집고

  자라는 풀

 

  내가 흔들리면

  염소가 다가옵니다

 

  염소는 트랙에서

  들판을 보고

  들판은 별을 복사합니다

 

  개구리는 별과 별이

  부딪치는 소리를 냅니다

 

  누군가의 한쪽이 기울어 갈 때

 

  나의 얼굴을 열고

  움직이는 

  염소가 있습니다

 

  이제 운동화 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발굽에

  풀이 낀 채로

  또각또각 뛰어다니는

  바람입니다

   -전문(p. 114-116)

 

  해설> 한 문장: '나'는 전신한다. 길지 않은 한 편의 시 안에서 '나'는 트랙을 달리다가, "트랙을 비집고/ 자라는 풀"이 되기도 하고, "발굽에/ 풀이 낀 채로/ 또각또각 뛰어다니는" 염소와 같은 바람이 되기도 한다. "트랙에서/ 들판을 보고/ 들판은 별을 복사"하는 이 아련하고도 평화로운 시공간에서 화자는 자유로이 전신하며 트랙 위에서의 달리기를 이어간다. (p. 130)

 

  거듭되는 전신과 더불어 트랙 위에서의 '달리기'를 수행하는 '나' 역시 위와 같은 '조건'이자 '방법'으로서 존재한다고 가정해 볼 수 있을까. 새로운 육체로의 재탄생을 꿈꾸는 '나'는 자연스레 비분의 운동을 포착해 내고 기술해 내는 '주어'임과 동시에, 그러한 기술의 '대상'이자 '조건'으로서 '나', 즉 끝없이 잘게 나누어 부수는 그런 미분 운동을 수행하는 '나'라고 말이다. (p. 132-133)

 

  이로써 우리는 시인이 왜 거듭 우울과 사랑의 전신을, 전신의 달리기를 이어 가는지 조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시인, 그간의 희생양으로서의 모습들을 거쳐 바로 시인 그 자신의 모습으로 달리기를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치 올림픽 성화 봉송이 여러 주자를 거쳐 최후의 성화 주자에게 전달되는 장면을 보듯, 계속되는 전신을 거쳐 시인의 모습으로 성화를 든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머잖아 성화를 들고 제단으로 향해 달려 나가는 그의 달리기 역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p. 142)

 

  그러나  『미분과 달리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시인은 그의 이러한 시 쓰기를 또 하나의 '방법'으로 삼고 있기에, 즉 시인은 예상이라도 한 듯 위와 같은 독해를 하나의 계기 삼아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기에, 우리는 그의 트랙에서 떠날 수 없다. 시인이 보여 주는 사랑과 우울의 이 끝없는 전신의 달리기를 거듭 더 바라볼 수밖에 없다. (p. 144) <양순모/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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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미분과 달리기』에서/ 2024. 6. 20. <파란> 펴냄

* 정우신/ 1984년 경기 인천 출생, 201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비금속 소년』『홍콩 정원』『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