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서평

반칠환『전쟁광 보호구역』/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3. 3. 22. 21:06

 

 

 * 《웹진 시인광장》2013.3월호/ 통호 제49호

 *  <시인들의 추천시집> 반칠환『전쟁광 보호구역』(도서출판 지혜. 2012.12.)

 

 

    비극의 탄력으로 굴리는 웃음

 

    

 

   한층 더 외로워진 나를 위하여 K가 매일 밤 전화를 걸어온다. 미풍, 보슬비, 새털구름 연상케 하는 K의 말씨는 어둡고 긴 겨울밤을 따뜻이 에두르고 편안히 잠들게 한다. K와 내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매번 1시간가량을 넘나들지만 어제그제 어느 때 단 한 번도 후유증이 남지 않았다. K의 말 속에는 배려가 있을 뿐 가시가 없기 때문이다. 어딘가 기록해 둘만한 내용도 아니므로 돌아서면 그만인 잔물결이지만, 식물에게 이로운 바람은 소리도 없이 불어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K의 전화는 삼동을 넘어 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개월째 외출이 없는 나로서는 딱히 들려줄 말도 없다. 간간히 부쳐오는 시집을 읽으며 겨우 끔벅이는 터이니 말이다. 그래도 삶에 위안이나 빛이 될 만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 게 나의 본심이다. 그런데 바로 어젯밤, 반칠환 시집 『전쟁광 보호구역』이 우리를 기쁘게 했다. 웃으면서도 아픈, 깊으면서도 가뜬한 화자의 터치는 그만의 강점이자 매력이다. “까치집을 품은 나무는 태풍에도 끄떡없다고 한다 (중략) 나무들이 둥지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버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까치집’ 참으로 의롭지 아니한가.

   “세계관이란 무엇입니까?/ 세계가 다 들어가는 관이 아닙니까?/ 참 무서운 말이로군요./ 무서울 것 없습니다. 세계가 다 부장품이니 없어진 것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세계관’ 전문). 그리고 또, “요즘 사람들 죄다 병원으로 와서/ 병원에서 가니/ 한生이 入院이로구나”(‘입원’ 부분). 이쯤이면 반칠환의 필치는 촌철살인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전쟁광 보호구역』에는 이 같은 작품들로 꽉 찼다. 도스또옙스끼는 “진정한 비극에는 희극이 있다”고 했다. ∴ 반칠환의 해학은 비극의 입체에서 얻은 벡터 혹은 텐서의 등가량이다.

   모처럼 K와 나는『전쟁광 보호구역』안에서 북극성이 이울도록 즐거웠다. 꽂아두었던『전쟁광 보호구역』을 뽑아들고 아예 줄친 곳을 짚어가며 주거니 받거니 옳거니 했다. 좋은 시란, 좋은 시집이란 역시 이런 게 아닐까? 지나치게 어렵거나 가볍지 않고, 비탄의 절제와 경계가 단정하여 사유의 문을 열어놓되 강요하지 않는 문장. “메뚜기 한 됫박을 볶았다/ 이 중에도 필경 위대한 메뚜기 한 마리쯤 있으리라/ 위대한 메뚜기라도 특별한 맛은 없다” 시인은 ‘위대한 메뚜기’로 평등사상을 피력했다. 우리의 행복이 그 같이 평등하기를! (추천자 : 정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