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어
이서란
해녀의 집 앞에서는
성산 일출봉이 대왕고래가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붉은 태양의 그물에 걸린
바다를 바라보며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일까를 생각했다
일출봉에 걸린 멍게와 소라
문어에 목을 맨 어머니
줄줄이 엮어지는 것들
살아서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삶
살아있는 것들의 유통기한을
바다는 쇄빙선처럼 부수고 있었다
고기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간 아버지가
대왕고래인 양 엎드려 실려 온 날
어머니는 납작해져 꽃물을 흘렸다
몇 날 며칠 속을 다 비워내 조개껍데기같이 가벼워진 어머니
이어도사나 노래 박자에 맞춰 칼질하며 회를 떴다
비린내를 뒤집어쓰고 물질하는
어머니의 몸에 어느덧 비늘이 눌어붙어 있었다
햇빛의 궤적에 따라 바다의 바닥까지 누비며
어머니는 바다를 내재율로 품고 있다
나는 물질하는 어머니의 유통기한을 손가락으로 세다가
숨비소리가 자박자박 윤슬에 반짝이는 광어 한 마리를 보았다
廣魚가 光語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바다에 놓아주었다
-전문(p.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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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인포럼 제3집 『시, 바다와 썸 타다』 <테마시: 바다> 에서/ 2023. 12. 26. <미네르바> 펴냄
* 이서란/ 2021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별숲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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