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츠기 교실
서윤후
선생은 시즈오카현 출생 녹차의 고장에서 태어났기에 언덕에 대한 이해가 깊다
각자 가져온 접시는 모두 깨진 것이다
조각을 이어 물결 무늬로 만들 수 있겠군요 깨진 곳 사이사이가 다시 친해지도록 작은 홈을 이어 반짝임을 그려낼 수 있을 거예요 금이 간 것을 숨길 수 없으니 더 빛나도록
그렇게 접시의 깨짐을 붙여 메우는 것이 킨츠기예요
상처를 아름답게 발음할 수 있었다
핀잔도 핏기도 없이 녹차를 호호 불며 마시던 선생은
각자 깨진 것과 그것을 메우는 시간을 차분히 기다려 준다
언덕을 가르는 기다림을 해본 적 있나요?
선생은 어느 날 가와구지코 호수가 그려진 엽서에 그런 질문을 적어준 적이 있었다
한국말은 어눌하고 학생들 솜씨는 서툴렀으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매달린 시간이 길었다
이어 붙인 대로 다시 깨질 수 있다지만
접시를 깨뜨렸던 실수는 이번 흉터의 좋은 재료가 된다
파편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선생이 수첩을 열어 꺼내는 말을 학생들은 받아 적었다
비법은 말을 걸어오는 일을 좋아해
빼곡한 히라가나 사이에 그려 넣은 무성의한 낙서
시즈오카의 녹차밭 언덕에 누워 있는 자신을 닮은 캐릭터다 볼펜 자국으로 그려진 말풍선에는
느낌표로 끝나는 일본어가 적혀 있다
뭐라고 적으신 건가요? 담백한 미소를 지으며 선생은 말한다
"비웃지 마. 내가 스스로 넘어진 거야!"
깨진 것을 이어 붙이며 무늬를 새겨 넣은 저 접시를 시작하는 접시라고 불러야 할까?
유약을 바르고 기다리는 하품들
선생은 시즈오카 언덕의 휘파람 조종사
창밖 하늘엔
영원히 날고 있는 비행접시
-전문(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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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3-8월(404)호 <신작특집> 에서
* 서윤후/ 2009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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